1940년 독일의 침공으로 수립된 프랑스 비시 정부에서 사법부는 정치권력의 통제 아래 놓였다. 제3공화국 시절부터 인정되던 법관의'부동성(不動性) 원칙'을 정지시키고, 법관들에게 국가원수에 대한 충성선서를 요구했으며 정치범 등 재판을 위한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부동성 원칙이란 법관은 징계 처분에 의하지 않는 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전보 또는 승진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정치권력이 사법을 지배하는데 반드시 개별 재판에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법관의 임명과 승진, 전보와 해임을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해방 후 사법제도의 재건에 착수한 프랑스는 1946년 제4공화국 헌법에 법관 부동성 원칙을 명문으로 규정했다. 최고사법평의회(CSM)를 헌법기구로 설치해 법관 인사와 징계에 관한 권한도 부여했다. 그러나 개혁은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의 사법부 인사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했으나 1993년과 2008년 헌법 개정을 거치면서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직접적 인사관여를 축소하고 최고사법평의회의 독립성을 확대했다.
스페인 역시 독재와 민주화의 경험을 통해 사법 독립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했다. 프랑코 총통의 장기독재 아래 사법부는 권위주의적 국가질서에 편입되었다.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었고 1978년 스페인 헌법은 법관의 독립성과 부동성 원칙을 선언했다. 헌법 제122조에 사법총평의회(CGPJ)를 설치해 법관의 임명·승진·감찰·징계에 관한 권한을 담당하도록 했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사법제도의 민주적 재건에 착수한 포르투갈도 1976년 헌법에서 법관의 부동성을 보장하고 법관의 임명과 승진, 전보·징계권을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CSM)에 부여했다.
정치권력의 사법 지배를 경험한 국가들은 민주화 이후 사법부를 지배할 수 있는 인사권력의 구조 자체를 개혁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은 모두 의회의 법관 탄핵제도가 없다. 법관 감찰과 징계는 최고사법평의회 또는 사법총평의회의 권한이다. 프랑스의 경우 사법조직 변경을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의 가중다수결과 헌법위원회의 사전 위헌심사를 거쳐야 한다. 스페인의 경험은 또 다른 교훈도 남겼다. 최고사법평의회 위원 선출에 정당들이 깊이 관여하면서 사법부 인사가 정치적 대립의 대상이 되었고 위원회 구성이 장기간 지연되기도 했다. 법관의 인사와 징계를 담당하는 헌법상 독립기구 설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구성 방식 역시 정치권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법원 판사를 임명하도록 했다. 일반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고 그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인사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국회 단순 다수결로 대법원장과 법관을 탄핵할 수 있고 대법관 증원 등 법원조직법 개정도 제한없이 할 수 있다. 국회 국정감사에 대법원장이 출석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대통령과 국회 다수파가 같은 정치세력에 속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할 경우 대법원 구성에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대법관 정원이 26명으로 확대되고 내년 차기 대법원장 임명을 앞둔 지금,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곧 정치권력에 종속된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공정한 재판과 이를 위한 사법부 독립을 위협할 수 있는 자의적 인사 개입을 방지할 제도적 견제장치가 충분한가에 있다.
사법개혁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사법부 인사권을 분산하고, 법관과 외부전문가 등이 균형있게 참여하는 독립적인 최고사법평의회를 헌법기관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관 부동성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사법조직 변경을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에 국회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며 사전위헌심사를 의무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사법부 독립은 법관의 특권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영향 없이 국민이 공정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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