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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김태진] 교류냐 일방적 주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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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전파력 지닌 문화의 힘… 北 당국이 아무리 금지해도 韓 콘텐츠 찾는 주민들
한쪽의 문화가 일방적으로 유입될 때 위험… 목적성 띠며 계몽 자료 될 가능성 농후
정부·여당, 北 체제 선전 선봉 노동신문 열람 자유… 일방적 문화 주입 방기 아닌가

김태진 문화특집부 부장
김태진 문화특집부 부장

1980년대 해적판임에도 크게 유행했던 소설이 있었다. 진융(金庸)이 쓴 '영웅문'이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묶어 엮은 것이었다. 독자들은 송나라 사람도 아니면서 '정강의 변'(靖康之變)에 공분했고, 운기조식(運氣調息)하며 수련하는 주인공 곽정의 성장과 모험에 환호했다. 발품을 팔아 책을 구했고, 덕업상권(德業相勸)의 정신을 실현하려는 듯 서로 돌려 봤다.

문화에는 강한 전파력이 있다. 사람들은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면 국가가 아무리 금지해도 찾아보려 한다. 북한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한류 영화와 드라마 등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소식이 여전히 들려오는 이유가 있다. 보천보전자악단이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고 목청껏 부른다 해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들으며 한국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세계 여성의 날'(북한식 표현 '국제부녀절')인 8일 북한 평양체육관 앞에서 예술단원들이 축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어느 한쪽의 시각이나 사상이 일방적으로 유입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자칫 편벽(偏僻)한 제작자의 의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북한 주민 모두가 우민(愚民)이어서 김 씨 일가 3대 세습과 우상화 작업에 열광하는 게 아니다. 반복적인 주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북한을 보면 된다.

특히 상상력이 결여된 문화 콘텐츠는 경직(硬直)된 '계몽 자료'에 가깝다. 문제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야기에 상당한 허구가 용인되고, 그것이 역사적 사실처럼 소비될 때다. 숨겨진 이야기라는 의미의 '비하인드(behind)'나 '야사(野史)'라는 말로 접근해 오는 서사의 마력(魔力)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자극적이고 전파력도 높다.

이를 간파한 일부 예술가들은 역사가의 보폭을 취한다. 동시대인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를 거듭 강조한다. 이런 태도가 신념으로 승화(昇華)하면서 목적성을 띠게 된다. 작품에 깨어 있는 시대정신을 집어넣으려 든다. 종국에는 대놓고 가르치려 든다. 상상으로 치장한 '계몽 자료'를 만드는 데 진력(盡力)하는 것이다.

문화 콘텐츠를 국민 계몽에 악용한 권력자는 숱하다. 소련의 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체제 선전용 곡을 만들라고 했다. 1949년 발표된 '숲의 노래'도 그중 하나다. 산림 복구 사업을 찬양한 칸타타였다. 시인 예브게니 돌마토프스키가 조국의 미래상을 담은 가사까지 붙였다. 스탈린이 소련을 위대하게 만든 정원사라 찬미했다. 그는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 등을 받았다.

북한 김일성도 백석 시인에게 체제 찬양을 강권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나타샤와 흰 당나귀 따위의 서정시를 쓸 게 아니라 인민을 위해 체제 찬양 구호를 쓰라는 명령 말이다. 시인이 월북한 뒤(그의 고향은 평북 정주였다) 김일성을 찬양하는 마지막 시 '나루터'를 발표한 건 1962년이었다. 1996년 숨질 때까지 공개된 작품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영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만은 아니다.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 웹사이트를 특별한 제한 없이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인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올해 안에 처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열람할 수 있게 된다. 국민의 알 권리가 명분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매체다. 대남 선전·선동이 목적이라는 걸 모르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이 북한의 일방적 문화 주입을 사실상 방기(放棄)하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선택적 환호와 비난이 난무하는 시대에 문화 비대칭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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