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논설위원 nove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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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칼럼-김태진] 겁박 정치의 말로(末路)

    [매일칼럼-김태진] 겁박 정치의 말로(末路)

    "백인의 짐을 져라. 너희가 기른 최선을 최전선에 보내라… 반은 악마요, 반은 아이인 자들에게." '정글북' 등으로 190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의 일부다. 20세기를 바투 앞둔 1899년 발표됐다. 형식은 시(詩)이나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된다. 화자는 미개한 이들을 바르게 이끄는 게 백인의 짐, 의무라고 말한다. '제국주의 합리화'라는 평가를 부정하기 어렵다.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하고, 12·12의 주역인 전직 대통령 둘을 재판정에 세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직후부터 재연되고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시대정신으로 설파(說破)하는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과 그 지지자들이다. 민주화 세력임을 자부하는 이들의 입장을 키플링의 시에 대입하면 어색하지 않다. 이들의 개념 정리에 따르면 속칭 '내란동조세력'은 교정하든, 처단하든 정리해야 할 대상이다. '싹 쓸어버리자'는 구호가 당연시된다. 적국(敵國)인 독일 나치에 협조했던 비시(Vichy) 정부(1940~1944년) 관련자들을 프랑스 정부가 처단했던 것처럼 매조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프랑스 정부는 1944년부터 1953년까지 10년 동안 35만 명을 나치 부역 혐의로 조사해 12만 명을 재판정에 세웠고 이 중 1천5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공감하기 힘들다. 이들이 지칭하는 내란선전·내란동조세력의 대표 격이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披瀝)하지 않고 비상계엄이 실행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게 이유다.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들이 매국(賣國)에 앞장서기라도 했는지, 대한민국을 옥죄어 적국인 북한에 갖다 바치겠노라며 내부 결속을 다지기라도 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그런데도 때가 되면 반복되는 기상나팔처럼 누가 내란동조세력인지 확인시킨다. "네가 심판받을 차례도 곧 오니 자중하고 있으라"는 식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현 권한대행에게는 민주당이 내란동조세력으로 분류해 놨다고 수차례 확인시켜 줬던 터다. 이런 겁박 정치의 말로는 예측이 가능하다. 여론의 우세로 정국 주도권을 쥔 것은 참작할 만하지만, 상대의 궤멸을 목표로 삼은 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공존 가능성을 없다고 보는 듯해서다. 이런 무도함은 자신들이 더 청렴하고 정당하다는 선명성(鮮明性)에서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 국면마저 내란선전의 불순한 목적을 가진 무리가 꾸민 자작극으로 풀이한다. 설문 문항이 이상하거나 설문 대상에 국민의힘 지지자가 많았다는 반론이다. 20일 발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밖 우위였는데 민의가 왜곡될 문항은 없었다. '정당 지지도'(어느 정당을 지지하거나 약간이라도 더 호감을 가지고 계십니까?)와 '차기 대선 집권 세력 선호도'(만약 대선 정국이 조기에 열린다면,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십니까?)만 담백하게 물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 체제가 시작된 뒤 기사나 칼럼에 좌표를 찍어 맹폭하는 등 민주당의 투쟁력은 한층 높아졌다. 당원 정치를 슬로건으로 앞세운 민주당이다. 당원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수박'이라 공격받던 기억이 선하다. 강성 당원의 목소리가 과표집(過標集)된 게 민주당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2025-01-20 20:14:18

  • [야고부-김태진] 이변(異變)의 불편한 진실

    [야고부-김태진] 이변(異變)의 불편한 진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전을 '이변(異變)'으로 받아들인 건 일본 국민뿐이었다. 패망의 신호음은 1943년부터 지속적으로 울렸다.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있은 1945년 8월 15일까지 2년 동안 일본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전황을 듣기 어려웠다. 언론, 특히 신문은 정부의 통제 아래 있었다. 국민적 단결을 강조했던 일본 언론이었다. 일본군의 활약상은 눈부시게 보도됐다. 1944년 10월 필리핀 레이테만(灣) 전투에 등장한 가미카제(神風)의 자살 공격마저 신성한 전술로 포장했던 일본 언론은 희망찬 전황만을 전했다. 1945년 3월부터 120차례 넘게 이어진 미 공군의 도쿄 대공습으로 일상이 흔들렸지만 언론의 보도 태도는 여전했다.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지 나흘이 지난 19일에야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진짜 모습'이 전국적으로 공개됐다. 학교폭력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은 간혹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아이를 잘 모르는 학부모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사건을 수임하면 "우리 아이가 피해자"라는 정황을 듣고 시작하는데 학교 측 설명과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학부모 앞에서 직업적 고충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진실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수나 배우의 팬클럽이나 정치인 지지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별처럼 빛나는 나의 우상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반대 세력은 거악(巨惡)이며 척결할 대상이 된다. 반대 세력을 다룬 기사에 악의적 댓글을 다는 건 정당한 훈계(訓戒)의 기능을 한다고 착각한다. 여론조사 결과 분석 자세도 그렇다. 탄핵 정국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는 여론조사를 두고 "질문이 잘못됐다"는 풀이가 일각에서 나왔다. 역으로 지난해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론조사꽃'이 내놓은 총선 판도를 국민의힘 지지층은 믿지 않았다. '이변'은 설명하기 힘든 걸 단박에 정리해 주는 마법의 단어다. 부작용이 있다. 반복해서 쓰면 진실과 멀어진다. 마주하기 싫겠지만 마주해야 해답에 가까워진다.

    2025-01-19 17:31:24

  • [야고부-김태진] 착한 식당과 바른 숙청

    [야고부-김태진] 착한 식당과 바른 숙청

    10년 전쯤 '착한 식당'을 찾아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착한'이라는 수식을 받는 기준은 명확했다. 인공·화학조미료 MSG를 안 쓰는 곳이어야 했다. 선정된 곳들은 한동안 '착한 맛'을 보려는 이들로 바글거렸다. 그러나 이들의 입소문은 거칠었다. 한마디로 "맛없다"였다. 미식가들마저 '맛집'이라 부르길 주저(躊躇)했던 건 이질적인 맛과 비현실적 선정 기준 탓이었다. 'MSG는 건강에 안 좋다'는 구호를 전파하려는 게 기획 의도인 듯했다. 과도한 사용은 염도를 높이기에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소량을 쓰는 것도 금기시하면서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입맛을 돋워 미식을 즐기게 하니 스트레스 해소 등에 얼마든지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솔푸드(Soul Food)'에 MSG 한 스푼 들어갔다고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잖은가. '대통령 탄핵'으로 돌진(突進)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시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사, 여론조사, 주장 등은 MSG나 마찬가지다. 내란 동조, 내란 선전 혹은 그걸 거드는 행위를 가차 없이 걸러내는 '착한 식당 지정자'는 민주당이다. 이제는 카카오톡 등 메신저로 퍼트리는 행위도 고발한다고 한다. 반(反)탄핵 세력 준동(蠢動) 저지(沮止)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만 눌러도 내란 동조가 될 판이다. 이런 인식의 바탕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목표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몸에 생긴 종기(腫氣)를 제대로 짜야 깨끗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짜다 말면 뒤탈이 난다는 것이다. 1948년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작금의 행태가 반복된다고 한다. 이번에 부역자들을 깡그리 정리하는 '바른 숙청'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위원 모두를 내란 공범으로 규정했던 민주당이다. 비상계엄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도 내란 공범으로 본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 대상으로 삼자마자 그와 부인을 무속과 무능으로 칠갑(漆甲)했다. 조리돌림하듯 구태(舊態)의 전형이라 몰아세운 게 얼마 전이다. 확인하기 어려운 '카더라'식 의혹도 반복된다. 탄핵만이 정의라던 광기(狂氣) 어린 8년 전의 살풍경이 겹친다.

    2025-01-12 18:20:21

  • [야고부-김태진] 너의 실수≠나의 기회

    [야고부-김태진] 너의 실수≠나의 기회

    공기놀이와 딱지치기·비사치기·팽이치기·제기차기 등 우리의 옛 놀이 방식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중이라고 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에 생존 게임으로 소개되면서다. 소셜미디어에도 주요 콘텐츠로 떠올랐다. 숏폼 알고리즘에 맞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40대 이상 세대들에겐 추억 소환(召喚) 도우미다.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대세가 된 시대에 층간 소음을 고려하면 공기놀이 정도가 자유로운 축에 든다. 실내라면 어디든 앉아서 할 수 있는 경기 규칙 덕분이다. 휴대가 용이한 공깃돌 덕분에 저비용 고효율 재미도 자랑한다. 덕업상권(德業相勸)이 따로 있나. 재미있는 건 애써 전파하려 하지 않아도 널리 퍼진다. '만물 기원설' 주창자인 중국이 곧 끼어들 태세지만 인도, 네팔,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 비슷한 놀이가 있다고 한다. 고증 가능한 기록물 중에 1733년 윤덕희('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아들)의 그림 '공기놀이'가 우리에겐 남아 있다. 국내에서도 지역별 용어가 다르다. 예컨대 점수가 나는 단계는 '판'이라 불렸는데 1895년 미국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이 쓴 '한국의 놀이'에는 '알 품기'로 적혔다고 한다. 기본 규칙은 대동소이하다. 손바닥과 손가락의 유기적 대응이 수반돼야 한다. 공깃돌 중 한 알을 집어던져 올린다. 동시에 바닥에 놓인 나머지 알을 순차적으로 거둬들인다. 던져 올려졌던 알이 내려오는 걸 잡아야 한다. 동체 시력이 우수할수록 유리하다. 당황스러운 건 합의를 거쳐야 하는 세부 규칙이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가 쌍피인가를 두고 상호 수긍해야 하는 고스톱과 결이 비슷하다. 자리 옮기기 금지는 기본이고 움찔하는 동작(야구에서 투수의 보크만큼이나)도 반칙으로 간주됐다. 이런 세세한 합의는 고수들의 범람(氾濫)과 무관치 않다. 반복은 완벽에 수렴되고, 승부욕이 부른 몰입마저 극단에 오르면 실수가 승부를 가르는 지경에 가까워진다. 상대가 있는 게임의 승리 공식은 상대성에 있다. 상대방보다 실책을 줄이고 기회를 살려야 이긴다는 것이다. 2024년의 마지막 한 달은 급변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정치가 게임처럼 다뤄져선 안 되는 때인 것이다. 공동의 위기를 지날 때는 너의 실수로 내가 돋보이지 않는다. 나도 위험해진다.

    2025-01-05 21:54:02

  • [야고부-김태진]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야고부-김태진]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주인공은 삼혼(三婚)의 중년 여성이다. 남편들은 하나같이 속물이다. 이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못 잡은 건 적절한 도움을 못 받은 탓이다. 출세와 생재(生財)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과 교류하는 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주인공도 고위층의 부인이 된 친구와 일본어 학원에 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들과 뒤섞인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라는 안내원의 말에 왈칵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는 어디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고전(古典)은 부끄러움의 각성(覺醒)을 강조하며 반복한다. 성경 잠언(30장 12절)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열반경에는 중생을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참괴(慚傀)'를 다룬다. 스스로 죄를 짓지 않으며 남을 가르쳐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맹자는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신으로 사방에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부를 만하다"고 한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자신이 속한 곳이 뒤처지면 낙오되는 경쟁사회라 인식하면 더욱 그렇다. 과오 인정은 곧 약점을 드러내는 자학(自虐)이 되기에 부인(否認)부터 하기 바쁘다. 자책과 겸손이 순진한 구도(求道)적 자세인 양 윤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심성이 된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남을 탓하기 바쁜 군상들 사이에서 진심 어린 반성으로 용서를 구하는 인간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난 22일 이른 아침 한 여성이 40년 전 무임승차했던 일을 사죄하며 200만원이 든 봉투를 부산역 매표창구에 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자기합리화는커녕 후회와 반성으로 당시를 수차례 반추했을 거라 짐작한다. 스스로에게 엄했을 양심에 '부끄러움'이 뭔지 곱씹는다. "다들 그렇게 산다" "국가가 해준 게 뭐 있나" "이렇게라도 내가 낸 세금을 회수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정상처럼 보이는 시대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일화다.

    2024-12-29 17:36:05

  • [야고부-김태진] 배운 역사와 알게 된 역사

    [야고부-김태진] 배운 역사와 알게 된 역사

    노태우 정부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던 때였다. "광주의 5·18을 아느냐"고 고교생들에게 물은 건 교생실습에 나섰던 대학생이었다. 표준어와 다소 다른 억양에는 이질감이 있었다. 그는 광주 출신이라고 했다. 차분히 5·18을 이야기하는 게 외려 비현실적이었다. 역사 교과서 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10년이 지나서야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게 놀라웠다. 충분히 당황할 만한 이야기와 주장이었으나 언제 어디서든 구글링으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언뜻 수긍하기 힘들었던 간증(干證) 같은 얘기들이 역사의 장면이 된 건 대학 입학 후 5월이 됐을 때였다. 혐오감이 이는 강렬한 시각적 자료와 함께였다. 분명 일어났던 일인데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역사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고, 다르게 보는 시각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인지한 때였다. 지금이야 일단락됐지만 경산 문명고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 당시 착잡한 심정이었다. 역사를 보는 눈이 교사와 교재에 따라 고정될 수 있다는 주장 탓이었다.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학생들이 역사를 인식할 것이라는 우려는 억지에 가깝다. 문명고 역사 교사들이 역사의 한쪽 면만 가르칠 것이라거나 학생들이 역사 관련 콘텐츠의 주입형 학습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이건 시험에 나오니 꼭 외워라"는 식의 1980, 90년대 교수법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교육부 검정을 받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 채택으로 문명고 학생들이 우파가 되는 일은 없다. 반대로 '깨어 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우면 올바른 시민의식이 싹틀 거라는 것도 편협한 기대에 가깝다. 더구나 그렇게 자리 잡은 역사적 시각이 고정불변이라 보는 건 기우(杞憂)다. 역사관은 살아가며 여러 차례 바뀔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모태(母胎)로 한 사학재단이 세운 학교에서는 채플(Chapel) 수업이 들어가 있다. 학생 중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이를 적극적으로 전도(傳道)하려는 목적도 아니고, 교리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퇴학 등 극단적 조치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시각과 시선도 있음을 소개하는 계기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일 거라는 오판은 학생 역량을 무시하는 폭력일 수 있다.

    2024-12-22 18:35:44

  • [야고부-김태진]

    [야고부-김태진] "너는 어느 쪽이냐"

    17세기 일본 에도막부는 세를 넓혀 가던 가톨릭 신자를 색출하는 방식으로 '후미에(踏み絵)'를 썼다. 십자가상(像)이 새겨진 금속판 위를 밟고 지나가게 했다. 밟기를 거부하는 건 물론 심적 동요(動搖)가 있어 보이기만 해도 신자로 판단했다. 종교적 양심에 기대면 분간할 수 있을 거라 봤다. 이런 풍경이 유럽인의 눈에는 희한했을 것이다. 19세기에 발간된 '걸리버 여행기'에도 후미에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구가 실렸다. 선장이 일본 군관에게 '걸리버가 아직 십자가를 밟지 않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이 10일 세계 인권의 날 기념식에 가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막아서며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개인적 입장이라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전쟁통에 아군 식별 암구호도 아니고 색깔 논쟁과 다를 게 뭔가 싶다. 만일 안 위원장이 "비상계엄 선포는 내란 기도다"라고 답했다면 문제시되지 않는 것인가. 헌법 19조 '양심의 자유'를 들먹이지 않아도 '양심인지감수성'이 의심되는 답변 강요다. 대관절 헌법 정신은 깨어 있는 시민들도 공감할 수 없는 문구에 불과했단 말인가. 비슷한 살풍경은 인사청문회에서도 목격된다. "5·16이 혁명이냐" "건국일이 언제냐"는 질문들이다. 재깍 답하지 못하면 호된 질책(叱責)을 받고, 원하는 답을 말하지 못하면 낙마도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도 아닌데 목숨이 위태로운 때가 있었다. 70여 년 전 지리산 자락은 밤낮으로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에 떨어야 했다. 빨치산은 밤의 지배자였고 군경토벌대는 낮의 지배자였다. 빨치산 토벌에 나섰던 차일혁 총경은 광기의 시대를 자서전에 남겼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어봐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과연 몇 사람이 이를 알겠는가?" "너는 어느 쪽이냐"는 물음은 환대 혹은 배제로 귀결된다. 차별하겠다는 포고(布告)다. 정치 이슈가 안주로 나왔을 때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답하는 게 불문율인 줄 알았는데 이젠 안 먹힌다. '무개념'이라고 찍힌다. 가수 임영웅이 그렇게 당했다. 비슷한 정치 성향끼리 모였다고 온전히 같은 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르고 나누는 게 습성이 된 이들은 또 계파별로 나뉘어 죽일 듯이 싸운다.

    2024-12-15 22:22:24

  • [매일칼럼-김태진] 시민 의식의 탈을 쓴 집단 폭력

    [매일칼럼-김태진] 시민 의식의 탈을 쓴 집단 폭력

    요즘에야 많이 바뀌었지만 일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 중 하나는 식당 내 흡연이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 흔했다. 민폐를 죄악시한다는 일본인들이 밥을 먹다가 담배를 피워 무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휴대용 재떨이에 재를 떠는 건 얼핏 상대를 배려하는 '쇼'처럼 보였다.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으로 드러내는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지만 드러난 행동이 민폐에 가깝다면 속마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파업을 권리로 보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이 국내에 유행처럼 번진 건 고(故) 홍세화 작가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공이 컸다. 철도 등 공공 운수 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에 나서도 프랑스 국민들은 톨레랑스를 견지해 함께 견딘다는 게 요지다. '얼마나 힘들면 불편이 예상됨에도 파업을 했겠냐'는 심정적 연대로 읽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역이 윤석열, 김용현 등 충암고 출신들로 드러나면서 충암고 학생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교무실로도 "도대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친 거냐"는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학생들에게 계란을 던지거나 폭력적 언동을 한 것인데 17세 남짓인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큰 상처다. 학교 측은 6일 교복을 입고 등하교할 때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임시 복장 자율화를 단행했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화풀이다. 학생들의 수모(受侮)는 선배를 잘못 둔 탓이 아니다. 작변(作變) 감행을 학교가 부추긴 것도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정에 책임 있는 동문 선배들의 오판으로 벌어진 사태다. 후배의 수모를 보고 고통스러워하라는 의도인지 모르나 후배들이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는 등식은 연좌제와 다를 바 없는 무지와 저열함일 뿐이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에 충암고 학생들이 찬동한 것도 아니다. 연대 책임 요구하듯 분노를 충암고로 분출한 건 미성숙을 넘어 미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들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욕설도 그렇다. 다짜고짜 자신들의 정의로운 논리를 설파(說破)하는 공간으로 쓴다. 탄핵 투표에 불참한 것을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30대 젊은 의원인 김재섭 의원마저 소셜 미디어를 폐쇄하다시피 했다. 그는 "가족사진에 악성 댓글이 달려 일단 다 비공개로 해놨다. 지역 학생들 팔로워가 많아서 원래도 정치 악플은 제한했었는데 심한 말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서다.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도 비슷한 고초를 겪는 중이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져 업무 연락도 겨우 할 정도라 한다. 수만 개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이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핵 찬성 촉구 문자 보내기 운동'이 일어난 결과다. 마구잡이식 감정 배설에 가까운 말과 글이어도 탄핵 찬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애국적이고 정의롭다고 포장될 수 있는 건가. 혈연·지연·학연 등이 있는 이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쏟아붓는 건 한편으로 측은지심을 부른다. 누군가를 뭉개거나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건 무시를 당해 본 경험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얼마나 분노했으면 그랬겠냐고 삭(削)칠 수 없다. 진정한 '톨레랑스'의 영역에는 공격적 욕설과 비난이 머물 공간이 없다. 민주적 시민 의식과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면서 겉으로는 집단 폭력을 당연시하는 이들의 현주소다. 이런 이들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청을 돋운다. 모골이 송연(悚然)해진다.

    2024-12-09 20:21:57

  • [야고부-김태진]

    [야고부-김태진] "믿어 주세요."

    1987년 대선에서 '보통 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후보는 "이 사람, 믿어 주세요"를 자주 썼다. 아이들이 따라 할 정도였고 개그 코너의 유행어로 활용되기도 했다. 군인 출신으로 12·12사태의 주역이라는 약점을 희석해야 했다. '군정 종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김영삼, 김대중 후보에 맞설 구호였다. 일개의 보통 사람이라는 이미지 설정은 서민들의 친밀감을 높이는 효과적인 카드였다. 믿음의 징표(徵表)가 요구될 때 대개 말잔치에 그친다. "하늘의 별을 따주겠다"는 프러포즈만큼 로맨틱한 경우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믿어 주겠냐"는 적반하장식 으름장도 효력이 강하다 보기 어렵다. 그래서 거짓말이 예사(例事)인 불륜 등 배반의 사건에는, 구속력이 그나마 있는 각서가 요구된다. 사기 피해자가 되지 않겠노라며 차용증을 쓰라는 것도 상식적 수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척결을 이유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마지막 말로 "저를 믿어 주십시오"라고 했다. 하루 전날 충남 공주 산성시장에서도 DJ석에 앉아 "여러분들 저 믿으시죠? 저희를 믿고 용기를 잃지 말고…"라며 믿음을 얘기했다. 그러나 국민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평소의 노력과 우호 여론이 있었다면 계엄령 선포는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습관성 탄핵을 남발하던 더불어민주당에 맞서 대통령 거부권에만 의존하면서 불통 이미지만 쌓였던 터다. 설상가상 비현실적 비상계엄 선포가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신뢰마저 깬 것으로 비쳤다. 다만 계엄군과 국민 사이의 믿음은 확고했던 것으로 보였다. 뭔가 어설펐던 계엄군에겐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동작이 많았다. 시민들도 공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우리 군이 우리 국민을 향해 발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안귀령 민주당 대변인이 "부끄럽지도 않냐"며 계엄군의 장비를 잡아 흔든 걸 계엄군이 총구를 들이밀어 위협했다고 몰아붙인 이들이 있었다. 총을 빼앗기면 안 되는 군인의 기본 자세일 뿐이다. 특전사 훈련을 보면 우리가 발 뻗으며 잘 수 있는 이유를 대번에 안다. 군 복무를 하면 적개심도 키우지만 내 나라와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걸 수백 번 복창(復唱)한다. 계엄군이 국민들에게 총칼을 겨누었다는, 선(線) 넘는 억지는 없어야 한다. 1980년 광주의 트라우마는 군인들에게도 크다.

    2024-12-08 23:24:21

  • [야고부-김태진] '긁?'과 '원영적 사고'

    [야고부-김태진] '긁?'과 '원영적 사고'

    국어사전을 자주 찾게 하는 작가들이 있다. 작가가 새로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애초에 사전에 있었거나 사투리로 널리 쓰이던 말을 작품에 스미게 한 것이다. 독자의 눈을 오래 붙듦과 동시에 적확한 쓰임새로 전달력을 높인다. 박경리, 박완서 작가는 '소설어 사전'이 따로 있다. 작가가 발굴하다시피 한 단어와 표현들이 정리돼 있다. 신조어도 요즘 말로 '효능감 쩌는' 표현이다. 휘발성이 높아 생명력은 짧지만 전달력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비슷한 집단이나 세대에서 사용돼 범주화의 기준도 된다. 예컨대 록밴드 공연에서 주로 외치던 'break'는 1990년대 후반 온라인 채팅에 '시원찮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지금은 사어(死語)나 마찬가지다. 이걸 빈번하게 쓴다면 '고인물' 취급을 받아도 싸다. 개중 일반어 반열에 오르는 것도 있다. '멘붕(멘탈 붕괴)'은 고담준론(高談峻論)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나 신문 기사에서도 적잖이 쓰인다. 올해 부유(浮遊)한 말 중 '긁'도 빼놓을 수 없다. '긁다'의 어간만 쓰인 경우인데 실제는 피동형 '긁히다'의 뜻으로 풀이한다. "자존심이 긁혔냐?"는 뜻이다. 단음절은 당사자에게 단검처럼 강하게 꽂힌다. 영어에서 욕설을 칭하는 'four-letter word'도 우리말로 표기하면 단음절이다. 공교롭게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꼴 때 쓰는 단음절 표현도 마찬가지다. '긁'은 마구잡이식 말싸움 실전에서 쓰이는 '삐졌나?'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초등학생 버전의 '어쩔티비'에 비해 직접적이며 저돌적이다. 답이 뻔한 유도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심기가 불편해졌다면, 즉 '긁혔다면' 진실이 드러난다는 식의 결론으로 이어 간다. "긁?"이라 비아냥대도 무람없으려면 '원영적 사고'가 필요하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겨도 좋은 측면을 부각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걸그룹 아이브의 멤버인 장원영의 긍정적 사고 흐름으로 소개된 바 있다. 양심의 가늠자가 제가끔 다르니 나만 떳떳하면 괜찮다는 세계관도 저변에 퍼지고 있다. 이마저 '원영적 사고'라는 시선으로 풀이하긴 곤란하다. 요즘 들어 윤리적 흠결마저 탄압의 일종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윤리적 잣대가 들쭉날쭉해진 걸 사회의 진보라 봐도 될지 모르겠다.

    2024-12-01 22:39:58

  • [야고부-김태진] 지독히 투명한 심사

    [야고부-김태진] 지독히 투명한 심사

    신인 작가 등용문인 신춘문예 공고가 지면에 실리면 기성작가들의 가슴도 두근댄다. 각종 문학상의 주인공도 이 즈음 가려지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프로선수'끼리의 각축전(角逐戰)이다. 국내에는 350개가 넘는 문학상이 있다고 한다. 상금이 많고 작품이 재조명되기에 마케팅 효과도 겸한다. 작가들이 수상을 마다할 이유가 웬만해선 없다. 상금이 많게는 1억원을 넘는다. 물론 액수가 전통이나 인지도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과 함께 국내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현대문학상의 상금은 1천만원이지만 70회 수상자가 불릴 차례일 만큼 역사가 깊다. 해외도 다르지 않다. 세계 3대 문학상이라는 프랑스 공쿠르상(賞)은 1903년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에도 상금이 10유로(우리 돈 약 1만5천원)에 불과하다. 상금 6천만원으로 정상급 문학상의 품격을 갖췄던 '동리목월문학상'이 몇 년 사이 신문 사회면에서 소개되고 있다. 수상자들에게 상금을 지급하지 않아 소송전에 휩싸이면서다. 올해는 수상작 선정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수상작 발표 후 며칠 만에 무효 선언이 나온 것과 관련 있다. 수상작 선정 절차에 하자가 있어서였다. 운영위원회가 선정을 무효화하자 작가는 소송을 제기했다. 비슷한 소송은 또 있었다. 2022년 수상자인 김훈 작가도 상금을 뒤늦게 받으면서 지연이자와 변호사비 관련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했다. 주최 측이 상금 사용처 제한 등을 명시한 약정서 작성 요구로 물의(物議)를 빚은 탓이었다고 한다. 문학상 제정은 창작 활동 독려라는 취지도 있지만 기념하는 인물의 문학적 성취를 기리려는 의도도 있다. 아동문학가들에게 시상하는 '김성도 아동문학상'의 경우 고(故) 김성도 작가의 명성에 걸맞은 시상이 필요하다는 공감 아래 내년부터 주관을 맡게 될 김성도기념사업회 측이 심사 투명성 확보와 함께 상금을 대폭 올리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동리와 목월에 대한 결례(缺禮)가 길어져서는 곤란하다. 절차적 투명성은 공신력 확보의 핵심 요소다. 전통을 세우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허물어지는 건 순간이다. 내로라하는 문학상 심사에 여러 차례 참여한 한 작가의 말이 쇄신책으로 보인다. "심사위원 선정부터 '지독하게' 투명해야 뒷말이 안 나온다." 김태진 논설위원 novel@imaeil.com

    2024-11-24 19:16:55

  • [매일칼럼-김태진] 선거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자들

    [매일칼럼-김태진] 선거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자들

    교통사고 현장에서 목소리가 큰 사람의 과실이 적다고 판단하던 때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다. ▷목덜미 잡고 하차 ▷눈이 어디 있냐며 삿대질 ▷기세 확보의 마침점인 증인 수소문까지의 삼단계 전개가 공식이던 야생의 시절이다.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이 주요 길목이나 교차로에 제법 걸렸다. 여성 운전자에게는 특히나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기록장치, 블랙박스는 세탁기만큼이나 여권(女權) 신장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주장해 볼 만하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인다. 정치권에서도 과학과 기술을 동반한 민심 파악 방식이 있는데 바로 여론조사다. 여론조사가 없던 시절에는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런저런 이들이 '토박이 전문가'를 자처하며 돕겠다고 선거 캠프에 줄을 섰다. 그런 이들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루면 기세에서 앞섰다는 평가가 입소문을 타고 번지는 식이었다. 그러니 유권자의 의사를 수치화한 여론조사 추이는 유용했다. 전략 기획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학적 영역에 있는 듯한 여론조사지만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이 가능한 건 함정이다.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청사진을 보여 주는 이가 나타나면 함정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어야 하건만 천군만마로 인식하는 게 출마자들의 심리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이 정설에 가까운 정치권에서 구체적인 도움을 제시하는 이라면 누구든 혈맹에 가까운 동지가 된다. 인사이트를 가진 책략가로 모시기까지 한다. 현인(賢人)이라면 그런 접근을 경계하겠지만 엎치락뒤치락하는 하루하루의 지지율을 보는 출마자의 감각은 마비되기 십상이다. 선거 전략과 전개를 일임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보름 동안 선거운동을 열심히 해서 당선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란 말이냐"고 따져 묻는다면 그 말도 영 틀리지 않다. 드물 뿐이다. 박빙(薄氷)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지역은 선거운동의 열성과 진심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한다. 최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줄곧 밀렸던 경기 화성을 지역구의 이준석 의원이 그랬다. 다만 도저하게 흐르는 민심의 흐름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세는 거스르기 힘들다. 소속 정당의 무능과 실책이 거듭되면 제아무리 유능한 출마자라 해도 개인기로는 한계에 부딪힌다. 여론조사 업체를 두고 여러 정치인 및 출마자들과 교류해 온 것으로 알려진 명태균 씨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알아챈 게 있다. 여론조사를 도구로 출마자들에게 접근하는 건 흔하며 선거를 치르기까지 정치인들이 '선거판의 자칭 고수들'에게 쉽게 휘둘린다는 사실이다. 이들 앞에서 5선 의원인 김영선 씨도 핀잔을 들으며 주춤거렸다. 선거 공훈에 따른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지만 그 수위가 '갑을관계'로 비칠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다. 명태균 씨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좋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설득력 있게 통용되는 말도 아니다. 그런 식의 추천을 우리는 일반적인 공천(公薦) 시스템이라 여기질 않기 때문이다. 5선 의원도 그렇게 움츠러드는데 정치 초보들은 어떨까. 하늘이 점지한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 출마자를 돕는 일은 없다. 선거판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이들 상당수는 책략가가 아니기도 하고 반대급부를 반드시 요구한다. 여전히 후진적인 대한민국 정치의 단면이다.

    2024-11-18 19:52:09

  • [야고부-김태진] 수기(手記)의 추억

    [야고부-김태진] 수기(手記)의 추억

    아날로그 수기(手記)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디지털 감성인 이모티콘과는 감정적 영역이 다르다. 간단한 메모에도 묻어나는 감성은 글씨체가 뿜어내는 '오라(aura)'로 부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심을 담으려 할 때 손 편지는 최적의 효과를 뽐낸다. 문학 작품에서 작품성을 고양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육필 원고를 작품집에 싣기도 하는데 고유의 필체마저 작품의 일부로 녹이려는 목적이다. 30년 전쯤만 해도 대학가는 수기의 천국이었다. 한글 프로그램의 안착과 PC의 대중화가 있기까지 리포트 작성은 순전히 수기로 이뤄졌다. 더구나 캠퍼스의 절반은 플래카드와 대자보가 차지했다. 정치색이 진한 구호는 플래카드에 담고, 설파할 필요가 있는 주제는 대자보에 실었다. 플래카드 제작과 대자보 작성은 당시 학생회 선전부의 주된 임무였다. 특히 대자보에는 필적이 드러나기에 작성자를 추측할 수 있었다. 근래 들어 대자보의 역할을 이어받은 것이 익명을 보장한다는 앱이다. 이 역시나 작성자의 정체를 추정하는 그 나름의 방식이 있다고 한다. 재학생 여부를 가리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져 오답이 나오면 외부인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북대의 경우 "정보센터에서 어떤 수업을 들었냐"고 물었을 때 수업 이야기를 한다면 영락(零落)없이 외부인으로 판가름 난다. 정보센터의 별칭은 '밥센터'이기 때문이다. 영역 표시처럼 드러나는 선호 표현도 있다. 특유의 어투가 있듯 문투(文套)도 무시할 수 없다. '점점 줄어든다'는 표현으로 '숙지다'를 쓰는 이도 있지만 '사그라들다'를 쓰는 이도 있다. 결코 쓰지 않는 표현은 알리바이 기능도 한다. 조은희 의원이 (통화 여부와 별개로) 명태균 씨를 '영남 황태자'라 했다고 명 씨가 주장했는데 조 의원은 "그런 말은 제 용어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이 수백 건 게시됐는데 한동훈 대표와 그의 부인, 장인, 장모, 모친 등 가족의 이름이 작성자로 드러나 소동이 일고 있다. 저열한 표현이 다수 포함됐는데 한 대표 가족이 자주 쓰는 용어인지는 불분명하다. 가능성이 낮다지만 명의 도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난리 통에는 아날로그 수기의 진심이 그리워진다.

    2024-11-17 19:07:22

  • [야고부] 지도자의 곤욕과 고난

    [야고부] 지도자의 곤욕과 고난

    중세 영국과 프랑스 왕이 할 일 중 하나는 백성들의 손을 만져 주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왕의 손을 만지기만 해도 병이 낫거나 에너지를 얻는다고 여겼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는 왕이 연주창(連珠瘡) 환자들을 만지느라 바쁘다는 장면도 있는데 손만 얹어도 치료되는 능력은 왕권의 정통성(正統性)으로 간주됐다. 영국 국왕 찰스 2세는 25년 동안 9만2천 명, 연평균 3천700명에게 손을 얹었다고 한다. 지난 3일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홍수 피해가 컸던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찾았다가 분노한 수재민들로부터 진흙 세례를 받았다. 수재민들은 "살인자들" "당장 꺼져라" 등 욕설도 내뱉었다. 그럼에도 국왕은 수재민들에게 손을 내밀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국왕이 현장을 방문하기 전 민심이 좋지 않다며 만류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국왕은 방문을 고집했다고 한다. 곤욕(困辱)이 주관적 감정이라면 고난(苦難)은 객관적 평가에 가깝다. 곤욕은 예상치 못해 멘탈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봉변(逢變)에서 오지만, 고난은 고초가 예상됨에도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곤욕의 뒤에는 수치심이 남지만 고난의 뒤에는 '까임 방지권'이 생긴다. 수세에 몰린 위정자 일부는 달걀 세례 등 가벼운 테러를 호기(好機)로 삼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개원식·시정연설 불참 관련 입장을 밝히면서 "특검법과 동행명령권 남발은 국회에 오지 말라는 것"이라 했다. 또 "국회가 그 시간만큼이라도 예의를 지켜 주면 열 번이라도 가겠다"고 했다. 최고 권력자에 맞선 걸 기개(氣槪) 넘치는 무용담으로 전하는 운동권 투사(鬪士)식 저항으로 피켓 시위를 벌이던 야당이 "사과하고 가라"며 고함친 기억이 선명할 것이다. 돌을 맞더라도 가겠다던 대통령이 참기 힘든 곤욕이겠지만 견디는 모습을 고난으로 읽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20년 전쯤이다. 집중호우로 물에 잠긴 마을을 찾아갔던 모 구청 부단체장은 주민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했다. 배수펌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온 탓이었지만 격분한 주민들은 그를 물속으로 떠밀었다. "주민 분노가 사그라질 때쯤 가지 그랬냐"고 하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물에 빠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책임 있는 사람이 나서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늦을수록 분노는 더 커진다."

    2024-11-10 18:44:53

  • [야고부] ‘B급 정서(情緖)’의 힘

    [야고부] ‘B급 정서(情緖)’의 힘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열리는 지방선거는 숙청(肅淸)의 시기다. 수장이 바뀌면 새로운 비전을 보이려는 의욕도 커지기 마련이다. 길게는 12년까지도 버티지만 짧게는 4년 만에 바뀌는 순장조(殉葬組)가 ▷캐치프레이즈 ▷마스코트 ▷축제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를 '쇄신'으로 읽어 달라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상징적 표식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것들에는 설명에 많은 공이 든다. 주로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품격)'의 풍모가 강한 탓이다. 시쳇말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인데 도슨트가 옆에서 설명해야 그나마 작품 의도를 알아들을 수 있는 추상화와 비슷하다. 난해함과 비공감 탓에 지속력이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들어 공직사회에 불고 있는 'B급 정서(情緖)' 축제는 엄근진과 거리가 멀다. 저비용 고효율의 B급 콘텐츠로 도전해 본 뒤 통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본격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거액의 예산 편성 없이 파일럿 프로그램 격으로 시작한 축제가 대박을 터트리면 그만한 효자도 없다. 지난달 26~27일 김천에서 열린 '김밥 축제'는 '김밥 없는 김밥 축제'라는 빈축을 샀다. 축제 시작 3시간 만에 재료가 소진됐다. "김밥은 먹지도 못하고 편의점 컵라면만 먹었다"는 항의가 넘쳤다. 예상 방문객 수는 2만 명 정도였는데 10만 명이 몰린 탓이었다. 김밥을 축제 소재로 삼은 데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김밥천국'의 공로가 컸다. '김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김밥천국'이라는 답으로 수렴(收斂)됐다. '태평천하'를 '천하태평'이라 읽는 것처럼 음운 도치(倒置)로 합성어를 읽는 건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설문 조사를 했다면 김밥보다 국밥을 먼저 떠올린 이들도 적잖았을 터. 그랬다면 국밥을 소재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테다. 혁신과 쇄신은 필요할 때 해야 공감을 얻는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다 헤져 가는 장갑을 끼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쓸 수 있는 물건마저 바꾸는 건 낭비로 봤다. '김밥 없는 김밥 축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역발상의 힘이 컸다는 것도 분명했다. 가능성을 보인 축제다. 심기일전해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2024-11-03 19:52:03

  • [세풍] 변사(辯士)의 입만 쳐다볼 텐가

    [세풍] 변사(辯士)의 입만 쳐다볼 텐가

    1926년 10월 단성사에서 무성영화 '아리랑'이 상영됐을 때 1938년까지 흥행을 이어갈 거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작품성을 폄훼한 게 아니었다. 무성영화의 특성 탓이었다. 소리가 나오지도 않는 판에 연기파 배우들의 웬만한 표정 연기가 아니라면 관객의 주의를 시종일관 묶어두기 어려웠다. 난제를 해결한 건 변사(辯士)였다. 대본을 좇아 읽는 역할이 아니었다. 무성영화의 전능한 창조주나 마찬가지였다. 화면 상황을 적당히 그러나 자극적으로 설명할수록 유능했다. 관객의 귀에 착착 감기니 제작자의 의도와 무관한 일방적 언설도 가능했다. 떠도는 이야기를 정연(井然)하게 연결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 믿기 마련이었다. 짐작하건대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도 하루가 멀다하고 왕비를 죽였던 샤리아르 왕이 자신의 말을 믿고 있다는 걸, 자신이 죽지 않을 걸 몇 달 만에 알았을 것이다. 변사의 맛깔나는 해설은 추임새 정도에 머무르지 않았다. 변사가 마음먹은 대로 영화의 장르가 바뀔 수도 있었다. 배우의 대사를 관객이 직접 듣지 못해서였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 좋더란 말이냐"라는 변사의 대사로 유명한 영화 '장한몽(長恨夢)'에 신태식이라는 가명으로 주인공 이수일 역을 맡았던 심훈(소설 '상록수'의 저자가 맞다)은 변사의 해설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배우의 이름을 얼토당토않게 부르는 것은 고사하고… (중략) 희생(犧牲)을 희성, 쇄도(殺到)를 살도로 읽는 따위는 너무나 상식을 지나는 일"이라 꼬집기도 했다. 일련의 비판들을 견디지 못하고 1930년대 후반부터 변사의 전성시대는 저물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이들 중에 만담가가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이들은 여론을 선도하는 기수(旗手)라 자처하며 지방 순회공연에 나서기도 했다. 1946년 1월 미 군정 정보처는 대구에서 열린 만담가 신불출의 공연을 "한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며 만담가인 신불출은 대구 공보관에서 공연했으며 공연을 마치면서 해머와 낫이 그려진 적기를 휘날렸다. 그러면서 그는 공산주의자가 조선인이 염원하는 독립으로 이끌 것이라고 외쳤다"고 보고했다. 신불출은 일제강점기부터 풍자와 해학으로 인기를 얻은 바 있었다. 일제의 정책을 조롱하는 대담한 만담으로 유명했고 해방 후 좌익 계열인 조선영화동맹에 가입했다. 좌익 활동을 이어간 그는 같은 해 6월 김두한(김좌진 장군의 아들)의 총격을 받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1947년 월북(越北)했다. 1960년대 초 대본 검열 등 통제적인 북한의 문화정책을 비판한 뒤 숙청됐다. 변사와 만담가의 시대가 재현(再現)되는 듯하다. '명 박사'라는 이와 영부인의 과거 메신저 대화 내용이 정쟁 공세의 재료가 됐다. 실제로 보이는 대화 내용과 다른 해석이 나왔다. 영부인이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 주세요"라고 한 건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라 했다. 남편을 당연히 '오빠'라고 부른다는 황당한 근거였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일부에서 통했다. 남편을 '아저씨'라 부른다는 영부인의 해명은 귓등으로 넘겼고 '명 박사'라는 이의 해명이 오락가락하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유야무야 넘겼다. 한쪽의 주장이나 추정을 단단한 근거로 삼는 건 위험하다는 걸 분명 알 텐데 거듭 인용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변사가 많으면 배가 우주로 갈 수도 있다. 또 그 배로 우주 개척 시대를 연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물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2024-10-28 21:11:24

  • [야고부] 암약(暗躍)과 미행(尾行)

    [야고부] 암약(暗躍)과 미행(尾行)

    해방 직후 미 전쟁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한 첩보 우선순위 1급에는 일본의 밀정(密偵)으로 이용된 한국인 명단, 친일 부역자와 정치범에 관한 정보 등이 포함됐다. 밀정 명단은 미 국무성, 전략정보국 등 다섯 개 기관이 제각기 요구했다. 조선총독부, 각 지방 경찰국 등에서 자료 확보가 가능했겠지만 순조롭지 못했다.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게 훨씬 많았던 탓이었다. 6·25전쟁 당시 미군 방첩대가 특히 경계할 대상으로 지목했던 부류 중에는 '여성'이 있었다. 1951년 10월 방첩대 지구 야전 보고서에는 이런 첩보가 있다. "북한 정부가 500여 명의 젊은 여성 간첩 요원들을 남한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한다. 선발된 모든 여성은 적어도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갖췄으며 각종 간첩 활동에 관한 석 달간의 훈련 코스를 거쳐야 한다. 이들은 통상 미군과의 교제를 활용하여 남한 당국의 수사를 피하려고 한다. 이 그룹의 상당수는 유엔군 댄스홀 등에 취업하고 있다." 아랍권의 CNN이라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 소속 언론인 여섯 명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소속 대원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 이스라엘군에서 나왔다. 확신의 근거는 하마스 대원 명단과 훈련 과정, 전화번호, 급여 등 정보가 포함된 문서였다. 아나스 자말 마무드 알샤리프 기자는 하마스에서 '팀 지휘관'을 맡고 있으며 200달러의 급여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고, 이스마일 파리드 무함마드 아부 오마르 기자는 '저격수'라 적혀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가정보원 직원들에게 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과 촛불승리전환행동 회원 9명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청구액은 500만∼2천만원이라고 한다. 경찰도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이들을 미행(尾行)해 촬영하며 동향을 파악한 게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미행당한 이들의 빠른 눈치도 대단하지만 미행을 들킨 직원들도 보통이 아니다. 미행이란 대상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게 기본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포털사이트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쓰는 것에 비해 미행이 직업적 본질에 가깝다지만 휴대전화 기록물까지 보여줘야 했다면 보통 문제는 아닌 듯하다. 가령 적대적 인물을 해외에서 미행하다 발각됐다면 어찌 됐겠나.

    2024-10-27 22:47:44

  • [야고부] 정신 승리의 반복

    [야고부] 정신 승리의 반복

    몇 해 전 우리 문단의 거목이라 불리는 한 작가가 '등단 50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린다"는 말로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이슈가 됐던 적이 있다. 그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노벨문학상과 관련한 작심 발언도 있었는데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로비로 이뤄졌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가장 정치적인 상'이라고 평가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탔을 때 일본이 엄청나게 으스댔는데, 뒤에 따라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와바타의 제자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라는 군국주의 작가가 스웨덴에 가서 거대한 파티를 수차례나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그런 파티를 할 능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노벨문학상 심사위원과 가까이하는 자리를 마련해 수상이 가능했다는 뉘앙스였다. 50년이 지나면 추천자를 공개하는 노벨위원회 홈페이지를 확인해 봤다. 1968년 당시 한림원은 '설국(雪國)' 등을 쓴 가와바타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로 "일본 정서의 진수를 위대한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꼽았다. 노벨위원회는 "후보자들이 옹호자들의 엄청난 집념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1907년부터 사망하기 직전인 1923년까지 매년 후보에 올랐던 카탈루냐 작가 앙헬 기메라(발렌시아의 지하철 역명이 그의 이름에서 왔다)가 그랬다. 가와바타는 후보로 처음 지명되고 3년 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스웨덴 한림원 회원이자 작가인 하리 마르틴손(1974년 수상자)이 1965년 처음 추천했다. 1943년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각본을 쓴 칼 라그나르 이에로브는 3명을 추천했는데 그중 하나가 가와바타였다. 1966~67년에는 하워드 히벳 하버드대 교수가, 1968년에는 한림원 회원이자 작가인 에이빈 욘손(1974년 수상자)이 추천하면서 결국 수상했다. 만일 올해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아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받았다면 어땠을까. 일본의 로비를 의심하는 주장들이 부유(浮遊)하지 않았을까. 의혹과 억측, 그리고 선동은 상대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까내릴 수 있겠지만 그래서는 영원히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정신 승리만 반복할 뿐이다.

    2024-10-20 19:26:06

  • [야고부] 성심당의 선의와 그 적들

    [야고부] 성심당의 선의와 그 적들

    미쉐린가이드에 실리거나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비견되긴 어렵겠지만 맵싸한 닭개장을 팔던 대구의 한 식당에는 암묵(暗默)적 규칙이 있었다. 손님은 업주가 정해 주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2명이 가면 생면부지의 다른 2명과 함께 4인석에 앉아야 했다. 닭개장 국물이 혀에 녹아드는 쾌감을 떠올리면 감내(堪耐)할 만한 규칙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가면 됐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특이한 영업 방식은 손님들의 입길에 오래 오르내렸다. '대전의 명물'로 불리는 빵 가게 성심당이 주인장 마음대로 정해 놓은 규칙에는 '예비맘 할인'이라는 게 있다. 임신부에게 5% 가격 할인과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는 혜택 등을 주는 것이다. 오랜 시간 서 있는 게 힘겨운 임신부에 대한 배려이자 공동체 의식이 녹아든 방침으로 풀이된다. 영향력 있는 기업이나 유명인이 사회적 책임을 공유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권장할 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역차별 논란이 일었다. 기혼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게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상대적 약자인 미혼·비혼 여성은 혜택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임신부가 벼슬이냐"는 둥, "환자, 어린이, 노인, 장애인에게도 혜택을 주라"는 둥 날이 선 표현들에 불쾌감부터 커진 건 인지상정이다. 제 발로 빵을 사 먹으러 갔다면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규칙 준수는커녕 불만 사항으로 점 찍어 불매(不買) 운운하는 막말도 보였다. '프로불편러(Pro+不便+er)'가 따로 없다. 임신부 배려에 불편감을 호소한 이들이라면 어린이·노인·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했을지도, 진심인지도 의심스럽다. '철딱서니 없는 투정'을 '각박해진 인심'이라 싸잡아 비판하기에 면구스러울 정도다. 올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명이 안 될 것으로 관측된다. 여유 부릴 수준이 아니다. 수정란 착상을 인지하면 곧장 임신 2개월이니 성심당이 베푼 특혜도 길어야 7~8개월이다. 이걸 강퍅(剛愎)하게 구는 건 인성 문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다양성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주의·주장으로 포장된 이기심으로 선악 구분을 시도한다. 임신부 특혜가 불공평하다는 '아무말대잔치'는 강짜를 부리는 걸로 비칠 뿐이다. '예비맘 할인'이 싫으면 성심당을 가지 않으면 된다.

    2024-10-14 05:00:00

  • [야고부] 전지적 임명 시점

    [야고부] 전지적 임명 시점

    17, 18세기 유럽 귀족 스포츠 중에 '여우 던지기(Fox tossing)'라는 게 있었다. 말을 타고 스틱으로 공을 쳐 골을 넣는 '폴로(Polo)'처럼 현대까지 이어지진 못했다.(폴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까지 정식 종목이었다) 여우의 몸통을 손으로 말아 쥐고 멀리 던지는 건 아니었다. 일정 공간에 기다란 천을 깔고 양 끝에 선수들이 서면 여우를 자유롭게 풀어 둔다. 여우가 천 위를 지날 때 양쪽에서 천을 강하게 당기면 여우가 튕겨 올라가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승리에 가까웠다. 승리의 함성이 커질수록 여우의 통성(痛聲)은 커졌다. 낙하 장치는 따로 없었다. 여우의 죽음이 전제였다. 동물보호단체가 봤다면 경(更)을 칠 일이다. 스포츠에 기록의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우 던지기'의 퇴출은 자연스럽다. 기록이 없다는 건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석에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현미경 야구'라는 훈장 같은 별칭의 일본 프로야구는 매년 자국 출신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만큼 높은 수준을 인정받았다. 축구도 그에 못지않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일본은 2050년 월드컵 개최와 우승을 야심 찬 목표로 내놨다. 2050년까지 ▷선수 커리어 정비 계획 ▷선수·지도자 육성 계획 ▷전술 확립 계획 ▷J리그 클럽 강화 계획 등이 들어 있다. 이른바 'Japan's way' 프로젝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과정이 정부 감사 중간 결과에서 일부 드러났다. 감독 선임 권한은 없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가 최종 면접을 맡았다고 한다. 위르겐 클린스만이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어색한 절차를 축구 팬들은 직감했던 터였다. 선수로 성공했던 이들이 감독으로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사람들이 대한축구협회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전지적 임명 시점'이라면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된다.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미리 토론하고, 판을 다 정리한 뒤 마지막 단계로 합의 의사를 표현하는 일본의 네마와시(根回し) 문화와도 다르다. 더구나 선임 과정과 관련한 기록이 없다는 건 기본이 안 됐다는 증거다. 구린내가 풍긴다.

    2024-10-06 18:4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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