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1억원을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옮겨 10년 넘게 나눠 받으면 사적연금 건보료는 한 푼도 붙지 않는다. 국민연금을 연 2000만원 넘게 받으면 피부양자에서 밀려나 매달 지역보험료를 내는 것과 정반대다.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을 다르게 보는 이 틈이 은퇴 설계의 출발점이 됐다. 다만 정부는 부과를 검토하고 국회에는 면제 법안이 올라 있어, 이 셈법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열려 있다.
◆ 공적연금 2000만원 넘겨 피부양자서 밀려난 은퇴자 31만명
건강보험은 공적연금 소득의 절반을 보험료 산정에 넣는다. 공적연금을 합쳐 연 2000만원을 넘기면 자녀의 직장보험에 얹혀 있던 피부양자 자격도 사라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2월 기준 피부양자에서 빠진 사람은 31만4000명을 넘었다. 열에 일곱은 공무원연금 수급자다. 부부 중 한 명이 기준을 넘어 배우자까지 함께 빠진 경우가 셋 중 하나를 넘는다.
이들이 새로 내는 지역보험료는 월평균 10만원에 가깝다. 연금이 월 170만원 안팎을 넘겼다는 이유로 없던 보험료가 생긴 셈이다.
◆ 사적연금은 연 1억5000만원 받아도 보험료 0원
IRP와 연금저축에서 받는 돈은 다르다. 건보공단은 사적연금 수령액을 보험료에 반영하지 않는다. 피부양자 자격을 따질 때도 마찬가지다.
감사원이 2022년 10월 내놓은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감사보고서가 대표적이다. 2019년 한 해 사적연금으로 1억5000만원을 받고도 피부양자로 남아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례가 적발됐다. 같은 시기 공적연금으로 피부양자 기준을 넘긴 지역가입자는 월 20만원 넘게 냈다.
이자·배당 같은 금융소득은 연 1000만원을 넘기면 전액에 보험료가 붙는다. 소득 종류 가운데 사적연금만 비어 있는 셈이다.
◆ 연 1500만원까진 세율 3.3~5.5%, 퇴직금 재원은 한도 밖
세금도 가볍다. 연금저축과 IRP에서 세액공제를 받은 돈과 운용수익을 연 1500만원 안에서 받으면 연금소득세만 낸다. 세율은 나이에 따라 3.3~5.5%다.
한도를 넘기면 초과분이 아니라 받은 돈 전부를 놓고 16.5% 분리과세와 종합과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은퇴자들이 1500만원 선을 지키는 데 신경을 쓰는 이유다.
퇴직금은 이 한도에 들어가지 않는다. 퇴직금을 IRP에 넣어 연금으로 받으면 그 돈은 한도 계산에서 빠진다. 대신 퇴직소득세를 10년 차까지 30%, 11년 차부터 40% 깎아 준다. 올해부터는 수령 기간이 20년을 넘기면 감면율이 50%로 올라간다.
그래서 퇴직금 1억원을 IRP에 두고 10년 넘게 나눠 받으면서, 연금저축에서는 한도 안쪽으로 보태는 설계가 나온다.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가 소개한 사례도 이 구조다. 퇴직소득세는 깎이고, 연금소득세는 한 자릿수이며, 건보료는 없다.
◆ 감사원 "덜 걷힌 보험료 384억원"…복지부는 부과 검토
감사원은 같은 보고서에서 2020년 기준 사적연금에 보험료를 매기지 않아 384억원이 덜 걷혔다고 봤다. 보험료 부과에서 빠진 과세 대상 사적연금 소득은 연 3조원 규모였다.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를 물린다는 원칙과 공적연금 가입자와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이었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새로운 소득원에 보험료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 수용성과 공·사적연금 간 형평성, 상품별 과세 방식을 해결 과제로 들었다.
사적연금을 공적연금처럼 절반만 반영할지, 어떤 비율을 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신규 소득 부과체계 개편 논의는 올해 12월로 예정돼 있다. 피부양자 탈락자에게 주던 한시 보험료 경감 지원은 지난 8월 끝났다.
◆ 국회엔 면제 법안…"이중 부과" 논란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국회에서는 지난해 8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일정 금액 이하 사적연금에는 건보료를 매기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면제 상한은 대통령령에 맡겨 액수는 정해지지 않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공적연금은 정부 등이 부담금을 지원해 건보료 부과를 다소 수긍할 수 있다"면서도 "세후 소득으로 자발적으로 납입한 저축성 성격의 사적연금에 다시 보험료를 매기면 이중 부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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