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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수 칼럼] 권력에 맹종하는 장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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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수 논설주간
이춘수 논설주간

"제가 드리는 조언대로 정책을 추진하려면 엄청난 저항에 부닥칠 텐데, 그래도 끝까지 제 말을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김재익 경제수석)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전두환 대통령)

1980년 한국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의 여파가 이어졌고, 1980년에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1.6%,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8.7%였다. 물가를 잡으려면 예산 동결 등 정부 지출을 줄여야 했고, 선거를 앞두고 선심 정책을 펴려는 정치권의 요구도 거부해야 했다. 기업과 관료들의 반발도 감수해야 했다. 김재익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확실한 뒷받침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포항종합제철소가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의 역할도 있었지만 김학렬 경제부총리의 소신과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후반 박 대통령은 대규모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려 했다. 문제는 막대한 자금과 기술 부족이었다.

당시 경제기획원에서 경제정책을 이끌던 김학렬은 포항제철 건설을 위한 자금 조달에 나섰다. 그는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이 제공하기로 한 청구권 자금 가운데 일부를 제철소 건설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초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했던 자금의 용도를 조정해야 했기 때문에 협상은 쉽지 않았지만 김학렬은 일본 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제철소 건설자금을 확보했다.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장관들중에는 김재익·김학렬처럼 권력에 대한 맹종이 아니라 소신과 책임, 남다른 실천력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토대를 쌓았다.

반면 현 정부의 장관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정동영 통일부·강신철 국방부·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 통일부 장관은 '평화' '대화'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북한의 각료로 의심(?)받을 만큼 대북 관계에서 국방·안보의 원칙은 찾아볼 수 없다. 정 장관의 국회 답변을 보면 평화공존을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대화와 협력을 추진하더라도 국가안보의 원칙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과 소신, 방법론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군사적 도발, 평화공존 정책이 실패할 경우 어떤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장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을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의 어깨는 더 무겁다. 국방정책의 실패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북의 지뢰 도발, 3군 사관학교 통합,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에서 강 장관은 국가안보, 국익 수호보다는 정권의 입맛에 맞춰 대통령 눈치만 보는 장관으로 국민에게 비친다.

전작권 전환은 자주국방이라는 목표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강 장관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속도전이다. '육사는 쿠데타의 진원지'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3군 사관학교 통합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은 국방부 장관에게 북한이 도발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정부의 대북정책이 군의 대비태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명한 입장과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무책임도 농심(農心)을 멍들게 하고 있다. 송 장관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농정 전문가이지만 장관으로서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정부가 농지 투기를 막겠다고 시작한 농지 전수조사는 누가 봐도 여러 문제가 예측됐는데도 송 장관은 대통령에게 반대 의견을 내지 못했다. 정부의 논리라면 상가 투자를 했는데 임대가 되지 않으면 이 또한 투기로 빈 상가도 압수해야 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장관은 단순히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아니다.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국가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정권의 이해관계보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앞세워야 하는 자리다.

대통령에게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장관들은 정부를 실패의 길로 내몰아 국민에게 고통과 배신만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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