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좌파들의 박정희 전 대통령 깎아내리기는 파상적(波狀的)이다. 영화 '암살자(들)'이 음모론으로 박 전 대통령을 깎아내린다면, 좌파들 중 상당수는 당시의 불우한 시대적 상황을 싹 배제하고, 파생적 산물인 부작용만 콕 찍어 이상적(理想的) 잣대로 비판한다.
'박정희 세대'가 물려받은 유산은 폐허와 굶주림, 절망뿐이었다. 당시 한국은 식민지배와 6·25전쟁으로 산업 인프라가 거의 전무했다.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은 북한의 6·25 남침이 있었고, 이후에도 무시로 도발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간첩들이 암약(暗躍)했고 무장공비가 박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청와대 습격을 시도할 정도였다.(1968년 1·21 사태)
박정희 정부는 수많은 위험과 난관(難關) 속에서 체제를 수호하고 산업기반을 구축해야 했다. 국민적 반대에도 일본과 국교를 회복하고 청구권 자금(무상)과 차관(유상)을 받아 포항제철소와 소양강댐, 경부고속도로, 농·어업 현대화에 투자했다. 국민은 덜 받고 더 일했고, 외국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불만과 요구를 억눌렀다. 한 예로 야당과 지식인들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을 피해자 보상(補償) 및 국민에게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묵살했다.
한국 좌파들 중에는 북한을 추종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빛나는 성공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대한민국 성공이라는 실체를 부정할 수 없으니 국민 인식(認識)을 바꾸는 작전을 쓴다. 당시 상황과 맥락을 배제하고 부작용만 쏙 떼서 이상적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체제 수호를 위한 안보 활동은 국민 간첩 몰이로, 정부의 산업화 드라이브는 개발 독재로, 협동·단결 노력은 국민 자유 억압으로, 경부고속도로 중심 산업화는 호남 홀대(忽待)로 몰아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중국과 외교 관계가 없었고, 일본과 미국으로 가는 무역로를 먼저 닦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을 '호남 홀대'라며 지역 감정을 부추겼다.
제3공화국 출범(1963년 12월 17일) 직후인 1964년 한국의 수출액은 1억달러였다.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국이던 필리핀은 4배가 넘는 4억5천800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逝去)한 1979년 한국 수출액은 150억5천만달러였다. 같은 해 필리핀 수출액은 46억100만달러였다. 박정희 집권기 한국 경제는 360배 성장했고, 같은 기간 세계 경제는 평균 6.6배 성장했다.
굶주림 속에서도 민주화를 외쳤던 당시 '저항운동'은 가치 있다. 그러나 굶주림을 해결하고 산업을 일으켜 부(富)를 쌓아야 민주화와 인권도 가능하다는 박정희의 신념이 더 옳았다고 본다. 굶주림, 실업, 나쁜 보건 환경과 짧은 수명이야말로 가장 먼저 걷어내야 할 인권 침해 아닌가.
어느 나라, 어느 세대나 각자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 많은 나라, 많은 세대가 그 짐을 포기하거나 무거운 짐에 깔려 압사(壓死)했다. 박정희와 '박정희 세대'는 우리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졌으며, 그 짐을 상상하기 어려운 곳까지 운반했다. 그 과정에서 땀과 피, 심지어 목숨까지 내놓았다. 그렇게 이 땅과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신화(神話)를 썼다.
이 땅에는 대한민국 성공 과정 또는 대한민국의 성공(북한 실패)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끊임없이 박정희의 역사에 침을 뱉으면서도 '박정희 세대'가 쓴 위대한 역사의 혜택은 고스란히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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