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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조선 평민 첫 일본군 장성 홍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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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중학교 수학 교사로 조용히 살고 싶다." 일제 강점기 때 창씨개명도 않고 떳떳하게 조선인임을 밝히면서도 일본군에서 장성(중장'왕족 아닌 조선 평민으로는 첫 사례)까지 올랐고, 2차 대전 뒤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태평양전쟁의 B급 전범으로 1946년 필리핀에서 생을 마친 홍사익(洪思翊)의 꿈이었다고 한다.

1887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05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들어갔으나 1909년 학교 폐쇄로 국비로 일본에 유학, 육군사관학교에 이어 1923년 오늘 육군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군의 해외 전투에 투입돼 활약했다. 1941년 육군 소장에 올라 중국 허베이성 주둔 보병 여단장으로 있을 때는 중국 팔로군에 속해 있던 조선의 항일부대(조선민족혁명당 산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와 전투를 벌였는데 조선의용대원 4명이 숨지고 대장 등이 포로가 됐다.

1944년 남방총군 병참감 및 포로수용소장으로 필리핀 전선에 배치, 연합군 포로를 관리했다. 중장으로 진급됐고 1945년 종전을 맞았으며 포로에 대한 부하들의 잔학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섰고 파란의 삶을 마감했다. 당시 국내서는 일본육사 동기생 등의 구명운동이 있었으나 무위로 끝났다. 일본에서는 1966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됐으나 국내에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됐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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