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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된 농공단지의 굴레…기업은 떠나고 지자체는 '간판' 갈아끼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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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필지·입주 규제·국비 지원 축소에 신규 단지 미분양 장기화
경북 미분양 면적 전국의 25%…산업단지 전환·제도 개편 목소리

도로와 필지 사이의 급격한 단차와 메마른 빈터가 고스란히 드러난 구미 고아제2농공단지 모습. 1980년대식 낡은 규제와 소필지 구획으로 외면받자, 구미시는 단지 명칭 변경과 일반산단 전환, 업종 확대 등을 추진하며 활로 모색에 나섰다. 구미시 제공
도로와 필지 사이의 급격한 단차와 메마른 빈터가 고스란히 드러난 구미 고아제2농공단지 모습. 1980년대식 낡은 규제와 소필지 구획으로 외면받자, 구미시는 단지 명칭 변경과 일반산단 전환, 업종 확대 등을 추진하며 활로 모색에 나섰다. 구미시 제공

40여 년 전 농어촌 소득 증대와 제조업 분산을 위해 만들어진 농공단지가 변화한 산업 환경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좁은 필지와 까다로운 입주 규제, 정부 지원 축소가 겹치면서 신규 농공단지를 중심으로 미분양이 장기화하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 농공단지의 이름과 기능을 바꾸거나 일반산업단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40년 전 기준에 갇힌 농공단지

11일 경북도 등에 따르면 농공단지 제도는 1980년대 초 농어촌 농한기 소득 증대와 소규모 제조업 분산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만들어진 제도와 입지 기준이 현대 제조업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기업 유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미 고아제2농공단지다. 입지 한계상 야산을 깎아 조성하면서 도로와 필지 간 단차가 심한 이른바 '다랭이 논' 형태의 계단식 지형으로 설계됐다. 이 때문에 높은 사면과 옹벽을 보강하는 추가 토목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입주 기업의 몫으로 돌아간다.

과거 기준에 맞춘 500평(1천653㎡) 안팎의 소필지 구획도 문제다. 필지마다 단차가 심해 여러 필지를 합쳐 대형 공장을 짓기도 어렵다. 분양가의 30~50%를 보조하던 국비 지원금이 전액 일몰된 점은 결정타가 됐다. 취수원 인근 환경 규제와 낡은 제조업 중심의 입주 제한까지 겹치면서 구미시가 분양가를 조성원가 대비 33% 낮춘 평당 약 78만원까지 인하했음에도 8월 말 기준 분양률은 23.4%에 그치고 있다.

영덕군 영덕2농공단지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9년 영덕읍 매정리 일원에 조성된 영덕2농공단지에는 총사업비 241억원이 투입됐으며 이 가운데 군비 비중은 69%에 달한다. 전체 면적은 32만6천㎡ 규모다.

이곳은 건설과 취소가 번복된 '천지원전'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친환경 제조공장 부지다. 100% 분양된 기존 영덕농공단지와 달리 소음과 분진, 오염 등이 적은 전자제품·비금속 제조업 등의 업체만 입주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하지만 입주 가능한 기업군 자체가 좁다 보니 관련 업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체 23개 필지 가운데 공장이 들어선 곳은 8개 필지에 그치면서 분양률은 7년째 20%대에 머물고 있다.

최근 나현주 영덕군의원도 임시회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장기간 방치 상태에 놓인 2농공단지를 원전 및 신재생 산업 등 영덕의 미래 에너지 산업 거점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며 "단순 공장 부지를 넘어 R&D(연구개발), 시제품 생산, 전문 인력 양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원스톱 산·학·연 협력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천지역에 새로 들어설 제3농공단지도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2016년부터 추진된 제3농공단지는 당초 2023년 준공을 목표로 했지만 사업이 지연되면서 한 차례 2025년으로 연장됐다. 이후 준공 목표가 다시 2035년으로 미뤄지면서 당초 계획보다 12년이나 늦춰지게 됐다.

◆'농공' 떼고 산업단지로…지자체 간판갈이

농공단지의 미분양과 공동화가 장기화하자 각 지자체는 체질 개선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임명섭 구미시의원은 최근 행정사무감사에서 "국가산단이 공존하는 구미 특성상 '농공단지'라는 과거 지향적 명칭 자체가 기업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며 명칭 변경과 함께 저폐수 배출 기업을 위한 입주 문턱 완화를 강하게 주문했다. 이에 구미시는 '스마트밸리', '테크노밸리' 등으로 단지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국적으로도 '농공단지'에서 '농공'이라는 두 글자를 떼는 지자체가 잇따르고 있다. 이름은 산업단지로 바꾸지만 법적 유형은 농공단지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간판과 제도가 서로 다른 셈이다.

춘천시는 지난해 12월 창촌·퇴계·당림·거두·수동·퇴계2 등 농공단지 6곳의 명칭을 산업단지로 변경했다. 올해 3월에는 거두산업단지 안내판도 교체했다. 춘천시는 낙후된 이미지를 벗기 위한 조치라면서 기존 입주기업이 받던 세제·지원 혜택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전북 진안군도 2017년 진안연장1·2농공단지를 '진안산업단지'로, 진안홍삼한방농공단지를 '진안홍삼한방산업단지'로 변경했다. 당시 군은 농공단지라는 명칭이 기업 활동에 불리한 이미지를 준다는 입주기업 의견을 명칭 변경 이유로 들었다. 다만 법적 유형을 바꾸는 산업단지 전환이 아닌 단순 명칭 변경이라고 명시했다.

◆현실적인 정부 지원책 나와야

농공단지가 산업계로부터 외면받자 제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조성규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23년 발표한 논문 '농공단지 관련 법제의 법적 쟁점'에서 여러 중앙부처가 농공단지 개발과 관리에 관여하면서 권한이 중복되고 통합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농공단지가 산업 기능뿐 아니라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자치의 가치도 지닌 제도인 만큼 일반산업단지와 구분한 별도 법제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농공단지는 국가균형발전의 관점에서 지원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며 "농공단지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역 산업계 관계자는 "국가산단에만 정책 관심이 쏠리는 사이 배후 제조업을 떠받쳐야 할 농공단지는 40년 전 규제에 묶여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농공단지가 첨단산업의 배후 기지로 거듭나도록 시대착오적 규제를 풀고 현실적인 정부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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