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광안리 근처에 복요릿집 골목이 있다. 예전 사무실 근처라 점심때면 자주 복지리를 먹었다. 복어 골목이라고 해서 복요릿집이 5곳 정도 있었는데 유독 한 군데만 줄을 서서 먹는 유명 맛집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남들 따라서 줄을 서서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무실에 손님이 왔는데 그 가게가 예약되는 곳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다른 복요릿집에 손님을 모시고 갔다. 근데 늘 줄 서서 먹던 유명 가게와 맛이 별다를 게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줄 서서 먹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한적한 가게에서 여유롭게 복지리를 즐겼다. 근데 식사를 하는 중에 콩나물 껍질이 나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머리카락도 아니고 벌레도 아니고 복지리에 복어보다 많이 들어가는 게 콩나물인데 콩나물 껍질 한두 개쯤이야. 그런데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콩나물 껍질이 한두 개씩 발견되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예전 줄 서서 먹던 집에서 복지리를 수없이 먹을 때 콩나물 껍질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나? 답은 없었다이다. 줄 서서 먹는 맛집의 비결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를 나는 그날 분명히 알게 되었다. '콩나물 껍질을 100% 손질한다.'
예술가의 최대 관심사는 '알아줄까?'이다. 연주자는 나의 연주를, 화가는 나의 그림을, 무용가는 나의 춤을 알아줄까를. 처음 기획하고 제작하고 완성하고 무대에, 갤러리에 작품을 올리고 전시하는 내내 이 질문들을 하게 된다. 그런 예술가를 힘 빠지게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사람들은 몰라"라는 말이다.
예전 다른 지역에서 공연하기로 해서 미리 공연 장소에 무대와 음향을 확인하러 갔었다. 무대는 괜찮았지만, 음향은 공연장에 설치된 것이 연주용이 아니고 연설용이라 음향 기기를 임차해야 할 것 같아 기획하신 분께 음향 렌털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분이 "이제껏 다른 연주팀도 다 이 음향을 사용했었다. 뭘 그렇게 까다롭게 그러느냐. 공연 보러 오시는 분들 시골분이고 노인분들이다. 들어도 잘 모른다. 그냥 해 달라"고 했다. 그 말에 수긍할 순 없었지만 뭐라고 더 이야기하면 정말 까탈스러워 보일까 봐 그냥 그 음향으로 공연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은 엉망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소리가 들리지조차 않았다. 공연 후 주최 측에서 연주자에게 나가시는 관객에게 인사를 해주길 원했다. 실패한 공연에 민망함을 무릅쓰고 일일이 관객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때 많은 관객이 우리에게 연주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음향이 안 좋았다고 예전에도 음향이 말썽이더니 아직도 그렇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랬다. 알고 계셨다. 그리고 알아주셨다.
'알아줄 거야'라는 믿음은 예술가를 부담스럽게도, 힘 나게도, 세세하게 완성도를 높이게도 한다. 예술가만 그럴까? 우리 모두 그렇지 않을까? 2018년 힘내자. 세상은 우리의 수고를 알아준다.
송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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