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굶주림이 적이된 패잔병

지금 러시아군대는 흡사 패잔병같다. 사기는 땅에 떨어진지 오래고 뿔뿔이흩어져 국민들로부터도 꼴사나운 존재가 되어있다. 한때는 이사회의 가장 엘리트집단이었던 붉은 군대들이 이제는 유대감이나 사명감은 찾아볼 수 없다.오로지 14개 연방국을 지키는 호위병역할을 할 뿐이다. 러시아에만해도 18만명의 장교들이 무주택자로 전전하고 있고 새로운 일자리에 귀와 눈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권력을 잡고 있는 옐친쪽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현재 러시아군대는 본토주둔 1백24만명을 비롯, 독일 3만5천, 발틱 3국에2만5천, 타지크스탄 1만5천, 몰도바, 조지아 각 5천등 모두 1백32만5천명으로옛소련시절 5백만명에 비하면 거의 4분의1로 줄었다.무엇보다도 군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종전 사병 2.5명당 장교1명(현 미육군은사병 6명당 장교1명)이던 것이 지금은 장교나 사병의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다행히 소련이 망한후 붉은군대는 새로운 독트린을 발표, [러시아 군대는 이제 어떠한 국가나 집단에 대해서도 적이 아니며 새로운 사명은 오로지 지역적갈등에 신속히 대처하는 것]이라며 거듭 태어나 이제 정치적으로는 외롭지않다.

하지만 이제는 오로지 빵을 위해 신음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군대에남아있는 병사들은 당장 처자식을 먹여 살릴 궁리가 눈앞에 닥친 가장 잔인한 적이다. 미그기를 설계하던 병사들은 미그29기의 설계도면을 건당 8천달러(6백40만원)에 넘기고 있고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차량의 기름을 팔아먹는모습은 시내 곳곳 어디서나 목격된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인 무기를 팔거나아예 용병으로 팔려나가는 병사도 흔하다.

이에대해 미국 {모스크바연구소} 세르게이 코르보박사는 [엄청난 군대들이어느날 자고 일어나 자신의 군대가 패배해 버린 것을 알아차린 것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붉은 군대들은 옛동구국들이 자신들에게 패전병과 같은 모욕을 주고 미국이 마치 이라크군대 대하듯 하는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다.일본이 쿠릴열도 북방도서 반환을 요구하자 붉은 군대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내 주먹이 운다]며 참는데도 한계가 있음을 나타낸 의미있는 움직임이었다.지난10월4일 모스크바 정쟁당시 의회빌딩에 대포를 쏘고 극도의 혼란속에서시내를 질주한 탱크들이 수십일간의 혼란을 평정한 것은 아직도 모스크바에서 힘의 균형은 군대만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옐친이 의사당에 대해 공격명령을 내렸을 때 군장군들의 첫번째 반응은 국방장관과의 전화선을 끊고 중립을 선언한 것이다.

그라초프국방장관은 당시의 신중함때문에 옐친으로부터 무능하고 믿을 수 없은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훗날 의사당공격과 관련,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전화선을 끊은 것도 내전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용감한 행동이었다]고 칭찬했다 한다.

거칠고 직설적이며 아프간전쟁의 영웅인 44세의 국방장관 그라초프는 정쟁혼란기에 의사당을 단번에 박살낼 능력은 물론 옐친에게 반대할 힘도 있었지만그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려했다. 그게 붉은 군대의 살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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