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망국에 검사 그만두고 독립운동 나선 홍진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망령되게 공상을 꾀하여 오로지 타력(他力)에 의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10여년을 와신상담하여 왔음은 독립 자치의 능력이 있다고 하는 확신 때문이었다. 금일에 이르러 근본적 해결을 하지 않고 오직 지엽적 미봉에 그친다면 평화 실현의 날은 없을 뿐만 아니라 침략자의 편리를 조장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

편모 밑에서 독학, 검사가 됐으나 조선 패망 후 독립운동에 나선 홍진(洪震·1877~1946)이 1921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의 워싱턴 태평양 회의 때 제3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장으로서 각국 대표에 보낸 독립청원서다. 1898년 법관양성소를 졸업, 판사와 검사로 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사직, 변호사로 독립운동가 변호와 변론을 맡았다. 3·1운동 참여 뒤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한성정부(서울) 조직에 나섰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상해), 국민의회정부(러시아)의 통합과 통일 임시정부 구성에 앞장섰다.

1926년 7월 제4대 국무령에 추대됐고 1930년 7월 길림에서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1931년 일제 만주침략 이후 당의 한국독립군과 중국 항일구국군의 한중 연합작전을 전개토록 했다. 1940년엔 한국독립당 결성, 광복군사령부 창설과 광복군 편성에 참여했다. 광복 뒤 귀국, 반탁운동과 건국사업에 힘쓰다 1946년 오늘 숨졌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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