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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대덕승마장 말발굽 책임지는 이수강 장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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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발굽 관리 넘어 말 건강 책임지는 일이란 점에서 큰 보람"
애견숍 하다 30대 후반 '도전'…美·獨 유학 후 늦깎이 학·석사
대덕승마장 말 50마리 책임자

이수강 장제사가 장제를 마친 말에게
이수강 장제사가 장제를 마친 말에게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목을 쓰다듬고 있다. 김도훈 기자

내부 온도 1천 도가 넘는 화덕에서 막 꺼낸 편자(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는 쇳조각)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모루 위에 올려진 편자를 장제사가 망치로 내려칠 때마다 둔탁한 금속음은 공간을 갈랐다. 불꽃이 튀고 망치가 부딪히면서 편자는 조금씩 미세하게 형태를 바꿔갔다. 장제사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질 즈음, 단단한 편자는 말의 발굽에 꼭 맞는 모습으로 완성됐다.

장제사는 말의 발굽을 관리해주는 전문 직업인이다. '꾸미다' '포장하다'는 의미의 '장'(裝) 자에 '굽'을 뜻하는 '제'(蹄) 자를 쓴다. 말의 발굽을 깎고 발 크기에 맞는 편자를 박아 붙이는 일을 한다. 주로 시중에 판매되는 기성품 편자를 사용하지만 직접 편자를 만들 때도 있다. 같은 종이라도 발굽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말산업육성법에 따른 국가자격으로 관리되는 장제사는 국내 100명도 채 안 될 만큼 희귀한 직업군 중 하나다. 지난 21일 오전 대구 달서구 대덕승마장 마사동에서 만난 이수강(59) 장제사도 그중 한명이다. 그는 20년째 대덕승마장에 있는 50여 마리 말의 발굽을 책임지고 있다.

이수강 장제사가 말굽에 편자를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수강 장제사가 말굽에 편자를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지인의 권유로 시작…미국·독일 유학까지

그는 30대 후반이던 2004년부터 20년 넘게 장제사의 길을 걸어왔다. 이전엔 대구 수성구 중동에서 애견숍을 운영했다. 그가 장제사란 직업을 알게 된 건 애견숍을 드나들던 한 지인 덕분이었다.

"2003년쯤일 겁니다. 애견숍 붐이 일던 때였어요. 외국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소규모 애견숍은 이제 전망이 별로 없겠다 싶었죠. 그렇게 미래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을 무렵 지인이 장제사란 직업을 권했던 거죠.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작은 호기심은 결국 그의 인생을 바꾸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장제사가 되기 위한 길은 좁았다. 국내에선 한국마사회에 들어가는 길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택한 길은 유학이었다.

"지인께서 미국 유학을 권했어요.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유학을 가냐고 했더니 방법을 알려줄 테니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2004년 초 애견숍을 정리한 돈을 들고 미국으로 떠났죠. 오클라호마주 퍼셀에 있는 한 교육기관에서 8주 과정의 장제 교육을 받았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문제부터 모든 게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 유럽식 장제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했다. 다시 독일로 떠났다. 브레멘의 한 유명한 농장에 머물며 폴란드 출신 사수에게 장제 기술을 배웠다.

2004년 11월 한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보 장제사에게 작업을 맡기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영업을 하러 전국 승마장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동갑내기 선배 장제사를 알게 됐고, 그의 도움으로 실무를 익히게 됐다. "그 선배의 배려로 일당을 받고 따라다닐 수 있었습니다. 도제식으로 장제 기술을 익힌 거죠."

2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면서 일감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자체별로 승마장이 생기고 개인 소유 말도 늘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는 "지금은 일이 많이 줄었지만 당시만 해도 많이 다닐 땐 하루에 주유를 2번씩 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그는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수강 장제사가 이 일을 시작한 해인 2004년 구입한 망치를 보여주고 있다. 망치 머리에 2004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김도훈 기자
이수강 장제사가 이 일을 시작한 해인 2004년 구입한 망치를 보여주고 있다. 망치 머리에 2004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김도훈 기자

◆'말 건강 책임지는 일' 보람

이수강 장제사의 작업장은 말이 있는 현장이다. 화물용 승합차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싣고 다닌다. 그는 이날 오전 6시쯤 대덕승마장에 도착해 12시까지 6마리를 장제했다.

일반적으로 말 한 마리를 장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정도다. 4개의 편자를 교체하는 비용은 장제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5만 원 안팎이다. 편자 교체 주기는 승용마는 6주, 경주마는 4주 정도다. 예를 들어 장제사 1명이 연간 100마리를 관리한다고 보면 매출은 1억 원을 훌쩍 넘는다. 장제사가 억대 연봉의 고소득 직종으로 꼽히는 이유다.

이 장제사는 장제사가 고소득 직업이란 것보다는 '말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라는 점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장제사는 단순한 발굽 손질을 넘어 ▷말의 걸음 ▷체형 ▷근육 상태 ▷운동량 등을 살피며 건강 전반을 관리하는 전문 직업이다. 편자의 작은 차이에도 말의 균형이 흔들리고 작은 오차 하나가 운동 능력은 물론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말의 움직임과 해부학적 구조, 보행 특성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이 장제사가 이 길에 들어선 이후 늦깎이로 대학에 진학해 석사 학위까지 받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그는 "말의 상태를 보고 꼭 맞는 편자를 달아주는 과정이 정말 보람 있다"고 미소 지었다.

이수강 장제사의 양쪽 정강이엔 짙은 색 흉터가 있다. 말이 갑자기 발을 구르며 생긴 부상이다. 이처럼 장제사에게 흉터는 일종의 훈장이자 일상이다. 무거운 말 다리를 붙잡고 날카로운 장제 도구와 뜨겁게 달군 쇠를 다루다 보면 상처를 피하기는 어렵다. 작은 상처는 다친 줄도 모르고 일할 때가 많다.

"초창기 독일에서 일을 배울 때 말의 뒷발에 차인 적이 있었어요. 뒤로 굴러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린 뒤 뼈는 부러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죠. 그런데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서 보니 왼쪽 가슴에 편자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더라고요.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어요. 지금은 말이 서있는 상태나 움직임으로 발길질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이 장제사는 말한다.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말이 있다. 그렇기에 작업에 앞서 말의 성향과 상태를 세심하게 살펴 긴장을 풀어주는 데 집중한다. 충분한 신뢰가 생기면 말도 자연스럽게 발을 맡긴다.

이수강 장제사가 편자를 망치로 두드리며 말굽에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이수강 장제사가 편자를 망치로 두드리며 말굽에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경험 쌓일수록 실력 깊어져

그는 말의 걸음걸이를 통해 장제가 잘됐는지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장제를 하기 전과 후의 움직임을 비교했을 때 원하는 방향으로 보행이 개선됐는지, 발을 디디는 방식이 달라졌는지를 살펴보는 식이다. "편자 교체 후 말이 편안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죠."

그런 점에서 장제는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이 중요한 분야다. 그런 경험의 요체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픈 마음에서, 그는 서라벌대 마사과 강사로 3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졸업생들 중에서 업계에 발을 디딘 이들도 꽤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자격증 취득에 걸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자격증을 따더라도 3년 이상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하다 보니 그걸 힘들어하고 못 버텼던 것 같아요."

그는 장제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인내심과 책임감을 꼽았다. 결과를 빨리 얻으려고 하기보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배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장제는 경험이 쌓일수록 실력이 깊어지는 분야인 만큼 꾸준히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만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장제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단조로운 일로 비칠 수 있지만 말마다 발의 상태와 움직임, 성향이 모두 다르기에 매번 새로운 고민과 배움이 필요합니다. 정해진 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각 말에게 맞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년이 없는 데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고 자연 속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동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도전해 볼 만한 직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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