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북한은 군사분계선(MDL) 아래로 땅굴을 뚫었다. 지금은 같은 접경지역에 철책을 세우고 지뢰를 묻으며 대전차 방벽과 참호를 만든다. 하나는 남쪽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고, 다른 하나는 남쪽과 단절되기 위한 장벽이다. 방향만 놓고 보면 정반대다. 그런데 대한민국 군과 국민에게 주는 심리적 압박은 의외로 닮았다.
과거 땅굴이 "북한이 어디까지 파고 들어왔나"라는 공포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국경선 요새화는 "어디까지 지뢰가 깔렸고 얼마나 더 군사화될 것인가"라는 불안을 만든다. 최근 DMZ 지뢰 폭발 사고까지 겹치면서 이 문제는 다시 안보 이슈를 넘어 정치권 전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떠올랐다.
◆1970~90년대 땅굴…'몰래 들어오는 북한'의 공포
북한 땅굴은 냉전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직관적인 안보 공포 가운데 하나였다.
제1땅굴은 1974년, 제2땅굴은 1975년, 제3땅굴은 1978년, 제4땅굴은 1990년 잇따라 발견됐다. 특히 제3땅굴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약 400m 들어와 있었고, 시간당 수만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는 규모로 평가됐다.
땅굴의 군사적 의미는 명확했다. 지상 감시망을 피해 병력과 무기를 남측으로 은밀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침투로.
당시 공포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이미 발견된 땅굴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땅굴이 더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오랫동안 따라붙었다. 대한민국 군도 탐지에 막대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했다. 한미 군 당국은 시추와 지질조사, 지진파 탐지 등을 동원해 추가 땅굴을 찾는 작업을 이어갔다. 북한이 땅 위의 군사분계선을 넘어오는 게 아니라 발밑에서 서울을 향해 접근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강력한 심리적 압박이었다.
◆2020년대엔 반대로 철책·지뢰·방벽…"들어오지 마라"
최근 북한의 모습은 반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사실상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이후 북한은 2024년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 병력을 대거 투입해 철책과 지뢰, 대전차 방벽으로 추정되는 구조물 등을 설치했다. 국경선 요새화다.
북한은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와 철도 일부 구간을 폭파했고, 그 자리에 대형 참호와 장애물을 만들었다. 이후 군사분계선 일대에는 삼중 철책 설치와 대전차 방벽 공사가 이어졌다. 대전차 방벽은 유사시 한국군 기계화부대의 북진 속도를 늦출 수 있고, 지뢰와 철책은 병력 이동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쉽게 표현하면 과거엔 '문을 몰래 뚫었다'면 지금은 반대로 '문을 없애고 벽을 세우는' 셈이다.
◆전략은 반대인데 왜 국민이 느끼는 압박은 비슷할까
과거와 현재 두 전략의 군사적 목적은 정반대인데 우리 국민이 받는 심리적 압박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첫째는 불확실성이다. 땅굴은 지하에 있어 어디까지 뚫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뢰 역시 매설 위치와 규모를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철책보다 보이지 않는 위험이 더 큰 불안을 만든다.
둘째는 장기화다. 땅굴은 한 번 발견하면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 추가 땅굴 가능성이 수십 년간 안보 이슈로 자리했다. 국경선 요새화도 마찬가지다. 철책과 참호, 지뢰지대가 계속 확대되면 1회성 군사행동이 아니라 군사분계선의 성격 자체를 장기간 바꾸는 일이 된다.
셋째는 실제 사고 가능성이다. 요새화 작업이 군사분계선 가까이에서 계속될수록 남북 군인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칠 가능성이 커지고, 지뢰 매설지역이 확대되면 우발적 사고 내지는 '우발'이라는 탈을 쓴 의도적 공격 위험도 높아진다. 최근 우리 군 장병 3명이 다친 DMZ 지뢰 폭발 사고가 이 불안을 현실 문제로 여실히 나타냈다.
◆땅굴 때도, 지금도…안보 이슈는 정치권의 '블랙홀'
안보 압박은 군사 영역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땅굴이 잇따라 발견되던 시절 북한의 침투 위협은 국내 정치와 사회 분위기를 강하게 흔들었다. 추가 땅굴 가능성과 북한의 대남 전략은 오랫동안 국민의 불안과 정치적 논쟁을 자극했다.
최근 국경선 요새화와 지뢰 문제 역시 비슷한 모습이다. DMZ 지뢰 폭발 사고 하나를 놓고도 북한 소행 여부, 군의 사전 인지, 현장조사 시점, 정부의 발표 시기 등을 둘러싸고 여야가 며칠째 충돌하고 있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과 조사 일정이 연관됐다는 주장까지 등장하면서 논쟁은 군사적 사실관계를 넘어 정치적 의혹으로 확대됐다.
즉 북한이 철책 하나를 세우고 지뢰 몇 발을 매설하는 데 드는 비용과 비교하면, 남한 사회가 이 문제를 놓고 소비하는 정치적·사회적 에너지는 훨씬 클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리전'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북한이 모든 요새화 작업을 남한 내부의 정치적 혼란을 노린 심리전으로 기획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현재 확인되는 군사적 목적은 남북 연결 차단과 방어시설 강화에 더 가깝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접경지역 움직임 하나가 대한민국 군의 감시와 대응 역량을 붙잡고, 정치권을 공방에 빠뜨리고, 언론과 국민의 관심까지 장기간 점유한다.
총을 쏘지 않고도 상대 사회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과거 땅굴이 발견될 때마다 대한민국 사회는 추가 땅굴 가능성과 침투 위협에 장기간 시선을 빼앗겼다. 이번 국경선 요새화와 지뢰 문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북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정치권과 사회 전체가 끌려가는 구도가 반복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북한의 행동에 매번 뒤늦게 반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군사적 사실은 신속하게 확인하고 정치적 과잉 해석은 줄이면서 국민 불안을 관리하는 대응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마땅한 해법이 아직 없다면, 적어도 북한의 저비용 행동 하나가 대한민국의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구조를 어떻게 끊을지 지금부터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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