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5년 넘게 공개해온 외환보유액 세계 순위(順位)를 보도 자료에서 삭제하기 전에 재정경제부와 상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한은은 별도 공식 회의나 기록은 없었지만 양측에 "상당 기간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면서 최종 결정은 국제국장 판단이었다고 했다. 2001년 2월부터 25년 6개월 동안 매달 제공한 정보를 없애는 사안을 정부와 한은이 상당 기간 논의했다면, 왜 정작 국민에겐 변경 사실과 이유조차 알리지 않았을까. 한은은 사전 논의를 거친 결정이었다면서도 지난 3일 설명도 없이 순위표를 뺐다가 논란이 일고서야 참고 자료를 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 순위가 대외 건전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서라고 해명했다. 경제 규모, 단기외채, 경상수지 등이 다르고 환율, 금값, 자산 가격도 순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순위도 지난해 말 9위에서 올해 5월 13위까지 떨어졌다가 6월 10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지표의 불완전성과 정보를 숨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논란이 커지자 한은은 IMF(국제통화기금) 자료에서 빠지는 국가가 있고 국가별 공시(公示) 시점도 달라 통계의 한계가 있다며 시스템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삭제 시점도 의문을 키웠다. 외환보유액 순위는 2020년 이후 오랫동안 8~9위권을 유지하다 올 들어 한때 13위까지 내려갔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높은 수준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시장 안정을 위해 상당한 규모의 외환보유액이 사용된 것도 순위 하락 요인으로 거론됐다. 순위가 크게 흔들린 때 25년간 제공한 정보를 없앴고, 사전 설명도 없었으며, 이제는 정부와 상당 기간 의견을 나눴다는 사실까지 확인됐다. 누가 삭제를 제안했고, 어떤 판단 근거가 있었으며, 정부와 한은 사이에 무슨 의견이 오갔는지 국민에게 밝히는 것이 당연하다. "공감대는 있었지만 공식 회의는 없었고 국제국장이 결정했다"는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불편한 숫자를 없애고 결정 과정마저 공개하지 않는다면 중앙은행의 신뢰(信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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