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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토키영화 등장 - 문예봉의 「춘향전」부터 변사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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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영화의 걸음마를 떼던 우리 영화계에 충격적인 미국의 발성영화가 처음 개봉된 것은 1927년.미국대통령 연설 실황, 워싱턴 공화당원 시위, 바이올린 독주 등 단편 기록영화를 묶은 파트 토키(부분 발성) 영화로 2년전 리드 포레 박사가 발명한 것이었다.

무성영화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변사들의 구성진 목소리에 웃고 울던 관객들은 바로 희한한 소리를 쏟아내는 발성영화에 탄성을 자아냈다. 여기에 큰 감동을 받은 촬영기사 이필우는 1933년 7월마침내 P·K·R 발성장치를 개발, L·C·K 발성시스템을 만들어낸 이창근과 함께 한국 발성영화시대를 앞당기게 된다.

1935년 10월 개봉된 한국 최초의 토키영화 '춘향전'(이명우 감독)은 한국영화 탄생 17년만에 이뤄낸 피나는 땀의 결실이었다. 서양 토키영화에 비해 기술적으로 뒤떨어졌지만 우리 영화계에 엄청난 충격과 개혁을 불러일으켰다. 무성영화시대의 종말을 감지한 영화제작사들은 경쟁적으로 기술의 혁신과 자본의 대형화를 꾀했다.

무성영화가 붐을 이루던 당시 영화제작비의 세배가 넘는 1만원을 들인 '춘향전'은 여러모로 발전된 한국영화였다. 기획, 녹음을 담당한 이필우가 동생 명우에게 각색, 감독을 맡겨 조명, 현상시설등 장비를 최신식으로 바꾼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고전적 용모로 큰 인기를 끈 문예봉(1913~?, 해방후 월북, 북한 인민배우가 됨)이 춘향역을 맡았으며, 변사또 한일송, 이도령 박제행, 향단 노재신, 방자 코미디언 이종철 등이 출연했다. 유도순작사, 홍난파 작곡으로 빅타레코드 전속가수 김복희가 노래한 한국 최초의 영화주제가도 만들어졌다.

'춘향전'은 당시 50전이던 입장료를 1원으로 올려받았지만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사실 발성영화라해도 대사가 얼마 되지 않았고 효과음도 양악을 사용했다.

1923년 일본인 조천고주 감독에 의해 최초로 영화화된 우리 고전 '춘향전'은 이후 무려 열세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져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하거나 새로운 스타의 등용문으로 인기를 모았다.1935년 이후 1938년까지는 일제 검열당국의 탄압과 표현의 자유 억제 등에도 불구, 한국 토키영화의 육성기로 기록된다.

1936년 개봉된 최후의 무성영화 '역습'(안종화 감독)도 당초 토키영화로 제작될 계획이었으나 회사 사정으로 무산된 것이다. 1930년대의 사회상을 가난한 형제의 세상살이에 비추어 묘사한 이작품은 조선총독부 경찰국이 후원한 방범계몽영화였음에도 불구, 이후 네번이나 리메이크될 정도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금룡 복혜숙이 부부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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