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문화부에 책정된 예산의 절대적 액수는 선진국에 비해서 턱없이 빈약하고, 다른 부처들과의 상대적 비율로 볼 때도 극히 열악하다. 문화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을 통탄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계의 비난적 태도가 정당한지 않은지는 당장 말할 수 없다. 모든 이성적 결정이 중요성에 관한 우선성의 순위선택을 전제하는데, 우리정부의 예산배정에 전제된 국가적 사업에 대한 순위결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 아닌지를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문화부 예산의 액수나 비율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문화부 예산의 분배에 반영된 정부, 아니 어쩌면 우리 사회 일반의 문화관이다. 그 문화관은 꽤 오래전부터 체육이, 최근에는 문학,예술, 유형 혹은 무형적 문화보존 보다는 영화, 만화의 활성화에 상대적 중요성을 둔 예산지원할당에 내포되어 있다.
문제의 문화관은 상업주의적이며, 정치적이다. 그것은 '문화는 상품이다'라는 소리높은 구호나 자주 유통되는 '문화사업' '문화외교'등의 개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좁은 뜻으로서의 문화인 문학, 예술작품들이나 문화유산으로서의 사찰, 고적, 전통적 골동품, 또 황영조나 박찬호,박세리 등으로 상징되는 체육문화가 중요한 까닭은 그런 것들이 국위선양에 기여하거나, 상품으로서 팔거나, 관광객을 유치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도구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전 만화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문화부의 정책발표는 바로 위와 같은 정치적,상업주의적 문화관을 다시 한번 재확인해준 사례이다.
누구에게나 돈은 귀중하고, 돈이 된다면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팔아야 한다. 물론 문화도 돈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팔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상품이 될 수 없고,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해도 팔아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문화는 바로 그러한 종류들 가운데의 하나이다.
문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한 공동체, 한 민족의 독특한 몸과 몸가짐이며, 얼굴과 마음이며, 생각과 영혼이다. 그것은 그 공동체, 그 민족이 특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의 시간에 걸쳐서 일구어낸 역사의 흔적이며 기록이다. 한마디로 한 공동체, 민족의 문화는 그 공동체, 그 민족의 정체성이다. 우리가 정말 문화의 참된 뜻을 깨닫고, 문화인을 자처할 수 있으려면, 유형 혹은 무형의 전통적 문화유산을 정성껏 보존하고, 정갈하게 털고 닦고, 그 구체적 형태를 감상하거나 그것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문화는 그냥 뚱땅거리는 소리이거나 떠들썩한 태도가 아니라 명상의 대상이다. 우리가 문화의 본질적 의미를 이와같이 이해하고 다듬으며, 그것을 부단히 새롭게 창조하면서 계승해 나갈 때, 비로소 남들도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인정하여 찾아와서 관광하려고 몰려오고, 상품으로서 돈을 내고 사간다. 상업주의의 문화관을 버리지 못하는한 우리는 자랑할만한 문화를 창조할 수 없고, 문화국민으로 자부할 수도 없으며 문화를 상품으로서 내다팔지도 못한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 비해 열악하고 그리 많지 않은 문화유산마저도 우리는 그나마 제대로 보존해 오지 못했다. 불국사, 해인사 등의 사찰,석굴암, 팔만대장경 등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와서 눈으로 보고 큰 인상을 받을만한 문화재가 별로 없다. 하회(河回)나 양동(良洞) 등 몇개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전통적 풍취를 흠씬 풍기는 고장은 전국 어디에도 별로 없다. 천년 고도인 경주나, 600년동안 수도인 서울에도 정말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구석이나 건물이 거의 없다. 문화정책은 운동경기, 노래자랑, 만화생산이나 그밖의 부산한 행사보다는 우선 남은 문화유산이나마 꼼꼼히 정성껏 보살피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후에 문화는 저절로 상품도 될 수 있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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