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한 사설 입시기관이 주관한 모의고사가 치러졌다.
교육부가 몇 년 전부터 고3생들의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를 금지하고 있지만 전국의 고교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건 교육부도 알고 있는 사실. 이번 모의고사에도 전국에서 33만여명의 고3생과 재수생들이 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능시험 응시 예상자의 절반 이상이 치렀지만 대구에서는 재수생들만 치러 응시자는 7천여명에 불과했다.
왜 전국의 고교들은 교육부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모의고사를 치는 것이고, 대구에서는 응시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와 교육계의 낡은 구조가 작용했다는 의견이 많다.
▲왜 모의고사를 치는가=모의고사는 수능시험이라는 단판승부를 앞둔 수험생들의 실전 연습이다.
수험생 개개인에게는 자신의 영역별 성취도와 취약점 등을 짚어보는 기회인 동시에 실제 수능시험에서의 긴장감이나 시간 부족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연습이다.
교사들에게는 학생들의 현재 학업 상황과 취약 과목, 단원 등을 파악해 진로를 지도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따라서 사설기관 모의고사를 무조건 제한하는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입시 교육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시·도 교육청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제하고 주관하는 모의고사. 올해 6, 7회 예정돼 있다.
이 정도 횟수면 충분할 것 같은데 고교들은 한사코 사설기관 모의고사를 치른다.
그 이유 역시 입시 교육에서 비롯된 것. 수능시험은 전국 수험생들을 점수에 따라 일렬로 세우는 상대평가인데 교육청이나 평가원 모의고사에서는 영역별 등급과 총점 등급만 확인될 뿐 상대적인 석차는 알 수 없다.
이에 비해 사설기관들은 응시생 개개인의 학급과 학교 석차는 물론 계열 전국 석차와 이에 따른 지원가능대학까지 꼼꼼하게 분석해 보여준다.
수험생들과 진학지도 교사들에게는 이것이 꼭 필요한 자료이니 교육부 조치가 먹혀들 리 없다는 것이다.
▲대구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2, 3년 전만 해도 대구는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 횟수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고교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모의고사 응시하기가 가장 힘든 곳이 됐다고 투덜거린다.
이번 모의고사에 대구가 빠진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달 모의고사에서 한 사설기관이 응시생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답안지에 표시하도록 한 데 대해 전교조측이 개인정보 유출이라며 문제를 제기한데 따른 여파로 보인다.
그러나 대구지역의 모의고사 응시가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전교조 대구지부측의 계속된 문제제기. 전교조측은 지나친 입시 위주 교육이 고교 교육에 파행을 불러온다는 점, 모의고사 응시를 둘러싼 공급업자와 학교간 유착 등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고교들은 그동안 교육부가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험을 치렀고, 모의고사를 치르고도 학급일지에 정상수업을 한 것처럼 기록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전교조는 또 고3생 응시를 빌미로 고교 1, 2학년생들까지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로 몰아넣는 것은 고교 교육 전체를 입시 체제로 만들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서울의 사설기관들이 주관하는 모든 모의고사의 대구지역 공급권을 한 업체가 장기간 독점함에 따라 학교와 뭔가 뒷거래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해법은 없나=일요일인 지난 20일 오전 대구 수성구 한 학원. 한 무리의 학생들이 강의실로 들어섰다.
이들은 하루 종일 시험지에 매달렸다.
바로 17일 실시된 사설기관 모의고사였다.
학교에서 치르지 않은 시험을 학교보다 3배가 넘는 돈을 내고 치른 것. 그래도 방법을 몰라서 못 치는 학생들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표정들이었다.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 효과와 금지의 현실 사이에서 이같은 부작용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적잖은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해가 갈수록 재수생과 재학생들의 학력 격차가 커지면서 모의고사 금지 조치는 대표적인 불만거리로 떠올랐다.
가뜩이나 재수생들은 내신성적 관리 걱정이 없고 두번째 하는 공부라 유리한데 모의고사마저 자유롭게 치르는 실정이니 재학생들이 뒤처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학교교육의 파행을 막기 위한 조치가 또다른 파행을 낳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고교 교사들은 지적했다.
교육청과 전교조, 진학지도 전문가, 학부모 등 관련 당사자들이 서로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전교조 관계자는 "무조건 고3생들의 모의고사 응시에 반대하는 건 아닌데 교장단 협의회에서 한두번 모의고사를 치르지 않기로 한 뒤 학생, 학부모의 불만을 전교조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짙다"면서 "각 고교가 자율적으로 응시를 결정하는 체제가 전제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필요하다면 전교조와 교육청, 학부모가 한 자리에 모여 입시 교육의 올바른 방향과 사설기관 모의고사 응시의 효과 등에 대해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대구시 교육청이나 고교 관계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선 고교와 전교조가 계속해서 평행선만 달린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는 결국 수험생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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