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구석본 作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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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 구석본

'나무를 사랑하자'라고 쓰여진

플라스틱 패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손가락으로 가만히 건드린다

흔들린다 나뭇잎은 펄럭이는데

플라스틱은 달랑거린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졌다

플라스틱 패는 가지를 더욱 조이며 단단히 매달린다

철사가 나뭇가지를 파고들었다

생살을 파고드는 패 하나,

겨울나무는 마지막까지 달고 있다

누군가가 플라스틱 패에

'나무를 사랑하자'라고 쓰는 순간,

플라스틱은 사랑이 되었다

오로지 몸을 섞기 위해

나뭇가지를 조이며 한 생명을 파먹어 들어가는

플라스틱 사랑,

끝내 떨치지 못한 올가미가 되었다.

우리 아파트 히말라야 시더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늘 벌서는 자세로 서있다. 두 팔을 번쩍 위로 들고 전봇대처럼 서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전깃줄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깃줄에 걸리는 가지를 하도 자주 잘라버린 까닭에 나무의 수형이 아예 바뀐 것이라고―.

교외 어떤 음식점에서는 낙우송 목울대에 대못을 박아 스피커를 달아놓고 있었다. 흑염소 고기 파티하러온 사람들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 부르라고. 오오, 불쌍하다 나무여, 어쩌다 인간의 마을에 붙잡혀왔는가.

그러나 나무는 불평하지 않는다. 철사든 대못이든 제 몸에 파고드는 건 모조리 삼켜 제 몸의 일부로 삼는다. 그게 나무의 사랑법이라는 듯이. 이 숭고한 사랑 아래 시인이여, "오로지 몸을 섞기 위해" 파고드는 플라스틱 사랑을 떠올리다니요. 올가미를 떠올리다니요. 아무리 거짓 욕망에 물든 이 세상이 보기 싫어도 말이지요.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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