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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리의 시와 함께] 재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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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기로 소문난 오래된 그 절

나와는 금생 인연이 딱 한 발짝 모자라

어떤 땐 눈 뜨고 일없이 차를 놓쳤고

어떤 땐 차를 타고도 폭설에 갇혀 못 간 그 절

남의 인연하나 억지 빌려 겨우 닿았을 때

절은 이미 한 발짝 앞에서 불길 속으로

훌훌 벗고 떠나가고 없었네

재로 지은 절 한 채 벗어두고

아쉬워 할 건 뭔가

재로 된 문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덜컹,

밖이 나오네

서러워 할 건 뭔가,

본래 자리에 돌려주어

산에 청산에 가득한

재로 지은 절

그 절 만나고 오는 길

눈이 밝아져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네

재로 된 돌부리였네

백무산

어느 날 우리들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 간 것들 참 많지요. 삼풍백화점이, 성수대교가, 그리고 어제 멀쩡히 웃고 있던 당신이 그렇지요. 눈앞에 보이던 것이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 지금껏 우리가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렇듯 아름다운 절 한 채가 사라져 갔죠. 불길 속으로 사라져 재만 남았죠. 안타깝지만 존재가 부재에서 비롯되고 유형은 무형에서 출발하였으니 사라진 절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원래 자리로 되돌아 간 건가요. "본래 자리로 돌려" 주고 나서 비로소 청산에 가득한 절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데요. 그 연기설로써 우리는 또 허무의 강을 굳건히 건너게 되겠지요.

참, 절이 있던 자리, 텅 빈 그 자리. 우리의 기억이 있는 한 사라진 그 자리는 무가 아니라 여백이라 애써 말하고 싶네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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