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즐겁게 축구해요."
이달 12일 대구 북구 강변축구장. 제12회 생활체육유소년축구대회가 열린 이날 강변축구장은 축구에 흠뻑 빠진 초등학생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찼다.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는 아니지만 공을 다루는 솜씨와 전술에 따라 약속된 움직임을 펼쳐 보이는 대회 참가자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며 앞으로 공을 내지르는 '동네 축구'가 아니었다. 일대일 돌파, 공간 패스, 공이 없는 2선의 움직임 등은 축구를 알고 그라운드에 선 모습이었다. 승패의 갈림이 환희와 아쉬움으로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지만, 이내 훌훌 털어버리고 서로 웃으며 악수를 하는 아이들은 축구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평소에는 여느 아이들과 똑같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학원도 다니며 학업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축구 유니폼을 갈아입고, 운동장에서 전문적인 지도자에게서 축구를 꾸준히 배워왔다. 공을 차는 기술부터 축구 경기의 규칙, 11명이 그라운드에서 펼쳐야 하는 유기적인 시스템도 수시로 익혔다. 공부가 '주업'이라면 축구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취미며 특기생활이다. 그래서인지 운동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 이기고 지는 데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싫어도 해야 하는 필수과정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생활체육의 활성화는 학교운동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엘리트 체육에만 몰입됐던 유소년 스포츠 활동이 클럽 형태로 다양하게 가지를 치고 있다. 대표적 케이스가 축구다. 2002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한'일 월드컵 열기를 기반으로 불기 시작한 유소년 축구는 단순히 좋아하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형태에서, 전문적인 지도와 시스템을 갖춘 클럽 형태로 바뀌어 축구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대구에서 전문적인 축구선수를 양성하는 엘리트 초등학교 축구부는 6개뿐이지만, 취미로 축구를 시작해 숨겨진 재능을 찾고 미래의 축구스타를 꿈꾸는 클럽 형태의 축구교실은 200개 이상이다. 부모 입장에서 축구 자체에 아이의 인생을 내맡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다양한 이유로 클럽에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의 수는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을 대구FC 유소년 축구교실에 가입시킨 이재근(45'대구 수성구 욱수동) 씨는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축구나 농구, 야구 등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이 리더십도 강했다. 건강을 위해 아들을 축구교실에 가입시켰지만, 아들이 축구를 통해 규칙을 배우고 동료와 협동하며 경쟁하는 방법을 배우길 더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부만이 오직 출세의 길이라 여겼던 예전과 달리 아이의 개성과 재능에 초점을 두고 키우고자 하는 부모들의 변화는 클럽 축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운동을 통한 인성교육은 부모들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대구시생활체육회 서진범 부장은 "핵가족에서 자라 상대적으로 협동심, 양보, 예절이나 매너, 근성 등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경기하는 축구는 작은 사회를 만들어 그들 나름의 사회성을 키우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이런 점들이 엘리트 축구에 집중됐던 축구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승부만 강조하던 '이기는 축구'는 차츰 '즐기는 축구'로 변하고 있다. 유소년 클럽 축구는 주말이나 휴일의 일부 시간, 연습과 경기가 이뤄진다. 이는 온 가족이 응원하며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게 해 가족들 간의 소통, 단합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런 클럽형 풀뿌리 축구는 자발적 흥미에서 시작해 강압적인 훈련 틀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창의적 플레이를 가져온다.
제12회 생활체육유소년축구대회서 우승한 '이현우FC'의 이현우 감독은 "아이마다 기량이 제각각이어서 차별화된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 아이가 가진 자질을 발굴하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축구가 재미있는 운동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춰 꼭 선수가 아니더라도 평생의 취미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간 유소년 축구교실을 운영해온 그는 "조금만 가르쳐주면 아이들의 실력은 분명히 늘어난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익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축구 인재풀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돼 뛰어난 선수 발굴에도 유리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적어도 생활 스포츠로, 때론 관객으로 축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소년 클럽 축구는 스타플레이어 발굴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브라질 등 축구 강국들은 하나같이 유소년 클럽 축구를 통해 '될성부른 떡잎'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소년 클럽 축구는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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