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매년 '엄마 지수'(Mother's index)를 발표한다. 이는 매년 교육 수준과 소득, 여성의 정치적 참여 등 다양한 기준을 토대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가장 좋은 나라를 선정하는 지수다.
올해 176개 국가 중 1위에 오른 나라는 바로 핀란드. 한국은 31위에 이름을 올렸다. 취재진은 지난달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찾았다. 핀란드 맞벌이 부부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고, 또 정부는 어떻게 일하는 부모들을 지원하고 있을까.
◆ 육아는 아빠의 의무
지난달 오후 핀란드 헬싱키 아라비아 지역. 핀란드 남성과 결혼해 2006년부터 헬싱키에서 살고있는 한국인 홍지현(35) 씨. 그는 오후 4시가 되면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공립 데이케어센터에 19개월 된 아들 윤호를 데리러 간다. 데이케어센터는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집이다.
센터에 도착하자 윤호가 엄마 품에 와락 안겼다. 홍 씨는 핀란드 알토예술대에서 뉴미디어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남편 마르꾸 레무나넨(37) 씨는 같은 대학의 강사로 근무한다.
이 때문에 윤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 5시까지 데이케어센터에서 지낸다. 이날은 평일 오후 4시였지만 아이를 데리러 온 젊은 아빠들이 많이 보였다.
헬싱키에는 우리나라처럼 어린이집 차량이 없어 부모가 직접 아이를 등하원시켜야 한다. 홍 씨는 "이곳에서 아빠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것은 평범한 모습"이라며 "나도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아침에 데려다 주고 저녁에는 시간 되는 사람이 픽업하러 온다"고 말했다.
공립 데이케어센터는 맞벌이 부부들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정부가 운영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데다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 헬싱키의 공립 데이케어센터 보육료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보육료 상한선이 있어 최대 264유로(한화 약 40만원)를 넘지 못한다.
지금 홍 씨는 학생, 남편은 직장인이기 때문에 한 달 보육료로 나가는 돈은 170유로. 아이가 18살이 되기 전까지 매달 100유로씩 아동 수당(child allowance)도 받고 있다.
홍 씨는 "비싼 헬싱키 물가를 감안한다면 보육료는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윤 씨와 함께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했다. 집에는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남편 레무나넨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핀란드 남자들은 육아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남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긴다고 윤 씨는 설명했다.
"한국 남편들은 대부분 육아를 '아내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핀란드 남자들은 '같이 하는 일' '내가 해야 할 일'로 생각합니다." 이날 윤호에게 저녁을 먹이는 것도 레무나넨 씨가 도맡아 했다.
핀란드에도 처음부터 이런 문화가 정착했던 것은 아니다. 30년 전만 해도 아빠는 밖에서 일하고, 엄마가 집안일을 맡는 것이 문화였다. 하지만 레무나넨 씨의 이 같은 육아 관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보살핌을 많이 받으면서 자연스레 형성됐다.
"제가 어릴 때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는 것만큼 아버지도 많이 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요리를 더 잘하기도 했구요. 물론 30년 전에는 이런 일이 '진보적인(progressive)' 것처럼 여겨지긴 했지만 지금은 당연한 일이죠."
◆ 법으로 보장된 '아빠 휴가'
핀란드는 변화한 인식만큼이나 제도도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레무나넨 씨는 윤호가 태어나면서 7주간 쉬었다. 3주는 '아빠 휴가'(paternity leave) 그리고 4주는 부부가 협의해 나눠쓰는 '부모 휴가'(parental leave)를 사용했다.
홍 씨는 "이렇게 정부가 아빠들의 육아를 권하고 있으니 애 키우기 편한 편"이라며 "한국은 여자들도 육아휴직을 쓰려면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데 핀란드에서는 여자는 물론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해서 해고할 수 없다. 핀란드는 좋은 제도와 이를 준수하는 회사,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핀란드는 부모 입장에서 세심하게 정책을 만드는 국가다. 우리나라로 치면 산부인과인 '네오볼라'(Neuvola) 시스템을 통해 임신한 지 12주가 되면 전담 간호사가 한 달에 한 번씩 건강을 체크한다. 의료진과 상담은 보통 30분 정도로, 외국인일 경우 무료로 통역사를 요청할 수 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초음파 검사는 단 2차례로 제한하며, 출산 뒤 아이의 백신 주사 접종 시기를 관리하는 것도 네오볼라 몫이다.
교통 체계도 마찬가지. 헬싱키에서 트램이나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탈 때 유모차를 끌고 있으면 성인 요금도 무료다.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이에게 집중하라'는 의미다. 트램 턱은 보도블럭과 높이가 비슷한데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홍 씨는 우리나라의 육아휴직 제도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법대로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한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회사가 추가 인력을 고용해야 하는데 회사는 인건비 부담에 이를 꺼리고, 직장 동료들은 늘어난 업무 때문에 육아 휴직자를 비난한다는 것. '애 키울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는 핀란드에 비하면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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