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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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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날마다 신천 변을 걷는다. 특히 요즘처럼 무더울 때는 신천 변보다 더 여름철 운동에 어울리는 곳은 없다. 흐르는 물길, 시원한 바람, 넓은 정원, 잘 자란 나무들, 그리고 신천 가운데 바위에 올라 천연의 노래를 부르는 물새들까지.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러하듯 신천 변이라고 해서 모든 게 아름다울 수는 없다. 특히 민망한 것은 연로하신 분들이나 병약한 시민들을 위해 곳곳에 설치해 놓은 정자를 몇몇 화투꾼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광경이다. 술병이 뒹구는 속에 남녀가 뒤섞여 화투를 치며 담배 연기를 뿜어 올린다. 체력도 대단해서 자정까지 그런다. 자연스레 정자 주변은 산책객들의 회피 길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애완동물을 동행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무시한 채 부부가 각각 개를 한 마리씩 몰고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똥도 그렇지만, 목에 쇠사슬이 걸린 주먹만 한 개가 주인의 보폭을 따르느라 우사인 볼트보다도 더 빠르게 네 발을 움직이는 모습이다. 저보다 더한 동물 학대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잔디밭 복판에 텐트를 친 가족들도 드물지 않다. 시민들이 함께 누려야 할 공유지를 막무가내로 점령한 것이다. 드디어 자기 마음대로 곡을 골라 찢어지게 유행가를 연주하는 아마추어 '악음가'가 나타난다. 악기 연습은 지하실에서 하는 것이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닐는지.

대백프라자에서 수성교 사이에 신천대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 통로가 있다. 통로에는 이런저런 대구의 문화재 사진들이 걸려 있다. 그러나 눈여겨보는 이가 드물다. 화투를 치고, 유행가를 연주하고, 개를 모는 등 사적 관심사를 드러내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 공동체 문화에도 관심과 애정을 가지기는 쉽지 않으리라. 문화재 사진 위로 지나간 거미줄을 치우며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견문이 짧으니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신천만 한 도심의 물길은 없을 성싶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는' 한강은 물론이지만 음악을 통해 세계적 명소가 된 '다뉴브 강의 푸른 물결'도 사람들에게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넓고 물이 많아 드나들 수 없으니 그것은 국경선이거나 이별의 장소일 뿐이다. 그저 강이다. 하지만 신천은 사람의 벗인 '천'이다.

외국인들에게 신천 변을 거닐어 보라고 권장할 만하다. 아마도 놀라고 기뻐할 것이다. 대도시 복판에서 신천만 한 자연의 호사를 누리는 것은 드문 경험이기 때문이다. 물론 화투꾼, 개몰이꾼, 악음꾼, 텐트꾼이 없는 신천이라야 한다.

예수도 고향에서는 환대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가까이 있다고 해서 신천을 홀대한다면 그만큼 우리 스스로의 값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신천을 가꾸자. 번잡한 도시 분위기가 아닌, 자연이 흐르는 신천으로 되살려내자.

정연지(대구미술광장 입주화가) gogoyon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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