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검은 1998년 10월 17일 여대생 정은희 양을 성폭행해 죽음에 이르게 한 스리랑카 출신 K씨를 특수강도강간 혐의로 5일 구속기소했다. 해외로 달아난 공범 2명도 같은 혐의로 기소중지했다. 14년 11개월.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슬픔을 참고 버텨낸 시간이다. 마침내 진실은 밝혀졌지만 그간 유족의 고통과 심정을 생각하면 참담한 비극의 끝이다.
당시 경찰은 정 양이 구마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다 트럭에 치여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족은 시신에 속옷이 없고 신체 중요 부위 손상 등 성범죄를 의심하고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부검의(경북대 법의학 교수)도 사고 전 신변에 중요한 위협을 받은 긴박한 상태라는 소견을 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유족 스스로 밝히라고 했다. 사고 현장과 인접한 도로 갓길에서 정액이 묻은 속옷을 찾아내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개연성이 떨어진다며 경찰이 이마저도 묵살했다.
하지만 유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재수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넣고 고소'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영구 미제가 될 뻔한 이 사건이 풀린 것은 K씨의 또 다른 범행 때문이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 체류하며 못된 짓을 계속하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으로 DNA가 추출되면서다. 작년 9월 대검과 국과수의 유전자 대조 과정에서 꼬리를 잡힌 것이다. 이 사건은 부실한 초동수사와 무성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진실을 밝혀낸 것은 결국 유족과 과학의 힘이다. 경찰이 건성건성 하다 문제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더 이상의 부실 수사는 없어야 한다. 하나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경찰의 다짐이 헛구호가 되지 않도록 분투해야 한다.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차문 닫다 운전석 총기 격발 정황"... 해병대 사망 사고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