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詠日本 / 신숙주

내가 지난날 큰 바다에 구름 돛을 달고

척촉()은 진달랫과에 속한 낙엽 관목이다. 높이 2~5m로,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서는 많이 모여 난다. 5월 무렵에 진달래꽃과 비슷한 깔때기 모양의 분홍, 연분홍 꽃이 피고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산지에 흔히 자라며 관상용으로 심기도 한다. 흔히 양척촉이라고도 하는데 학명은 'Rhododendron schlippenbachii'이다. 진달래의 방언인 '참꽃'에 반하여 '개꽃'이라고도 한다. 산객(山客), 철쭉으로 불리는 꽃을 읊은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외로운 배 부상바다 구름 돛 높이 달고

그 당시엔 여기쯤에 잠시 흥미 붙였는데

지금은 바라만보니 생각 그저 아득하네

我昔雲帆掛大洋 孤舟五月繫扶桑

아석운범괘대양 고주오월계부상

當時暫寄須曳興 今日相看思渺茫

당시잠기수예흥 금일상간사묘망

【한자와 어구】

我: 내가/ 昔: 옛적/ 雲帆掛: 구름 돛을 달고/ 大洋: 큰 바다/ 孤舟: 외로운 배/ 繫: 매다/ 扶桑: 부상, 해가 돋는 동쪽 바다를 빗대어 이름/ 當時: 당시/ 暫: 잠시/ 寄須: 모름지기 의지하다/ 曳興: 흥미를 붙이다/ 今日: 요즈음엔/ 相看: 서로 바라보다/ 思: 생각/ 渺茫: 그저 아득하다.

'내가 지난날 큰 바다에 구름 돛을 달고'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희현당(希賢堂) 신숙주(申叔舟'1417~1475)로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공적이 많았다. 중국 음을 훈민정음으로 표기하기 위하여 성삼문과 함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의 도움을 얻었다. 황찬은 그의 뛰어난 이해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내가 지난날 큰 바다에 구름 돛을 달고/ 5월에 외로운 배 부상에 매었다네/ 당시는 여기쯤에 잠시 흥미를 붙였었는데/ 지금은 서로 바라봄에 생각 그저 아득하기만 하여라'라고 번역된다.

위 시의 제목은 '일본 철쭉을 노래하다'로 번역된다. 일본꽃은 '사쿠라'라고 부르는 벚나무다. 그 나라에도 잘 자라지만 우리나라 곳곳에도 잘 자라는 나무다. 그런 가운데 일본 철쭉이라는 척촉() 꽃을 보면서 시상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시적 배경이 되고 있다.

작가는 돛을 단 배를 타고 먼 대양을 항해하고 있다. 외로운 배가 해 돋는 부상바다에 그냥 매달려 있으니 자신이 수평선 멀리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시상이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보았다면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겠다.

화자는 마냥 흥미로웠을 것이다. 멀리서 척촉화도 보았겠지만 위 작품 표현의 배경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시 볼 수 없는 그런 정경들을 생각하면서 바다에 몸을 기대고 있으면서 지난날을 상상하게 된다. 과거 회상의 시상 전개를 멋지게 이끌어 내고 있음을 본다.

신숙주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4차례 공신 반열에 올랐던 인물이다. 호는 보한재(保閑齋), 희현당(希賢堂)이며 시호는 문충(文忠). 1438년 생원과 진사를 뽑는 시험에 모두 합격했고, 이듬해 친시문과(親試文科)에서 을과로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우부승지'좌부승지'직제학 등을 역임했으며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세조가 등극했을 때는 대제학에 오르며 출세가도를 달렸다. 단종 복위를 위해 거사를 일으켰던 성삼문 등 집현전 동료들을 척결하는데 역할을 했고, 금성대군과 단종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 변절자로 불렸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을 지내 3정승의 요직을 모두 역임하는 등 조선 초기 핵심 정치지도자로서 활약했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외교와 국방 등에서 두루 능력을 발휘했다. 학문적 소양이 깊어 다양한 책을 편찬하는데도 업적을 남겼다.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은 물론 '동국통감' 편찬을 총괄했고 '국조오례의'도 개찬했다. 저서로는 '보한재집'(保閑齋集)이 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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