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철수, '기초선거 무공천' 자신 없어졌나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 등 정국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직접 만나자고 제의한 것은 생뚱맞다. 이미 지방선거의 구도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약속을 뒤집은 새누리당과 누차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싸움으로 굳어지고 있다. 약속을 어겼으면 어긴 대로, 지켰으면 지킨 대로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안 대표가 힐링 몇 번으로 백면서생(白面書生)에서 일약 제1 야당의 공동대표가 된 것은 '새 정치'라는 말이 발산하는 신선함 때문이었고, 그 새 정치가 정치적 수사(修辭)에서 벗어나 정치적 행위로 구체화된 것이 바로 기초선거 무공천이다. 그리고 이는 동질적 부분 못지않게 이질직 요소도 많았던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합당한 최대의 명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안 대표에게 무공천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이다. 그러지 않으면 안 대표는 약속을 어긴 새누리당과 똑같은 정상배(政商輩)가 되고 새 정치는 끝장난다.

그런 점에서 새누리당이 공천을 하든 말든 안 대표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뚜벅뚜벅 자기 길을 가면 된다. 그런 모습이 안철수와 '구태' 정치인들을 근본에서부터 갈라주는 변별적(辨別的) 자질이다. 전 대통령의 고상하지 못한 표현을 빌자면 안 대표는 그런 모습으로 '재미'를 좀 아니 톡톡히 봤다. 공천을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은 기왕에 제기됐었다. 그럼에도 안 대표가 창당하면서 무공천 약속을 재확인한 것은 그만큼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인제 와서 새누리당에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며 날을 세우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자신의 판단에 자신이 없어진 것인가 아니면 무공천에 대한 당내 반발을 잠재우지 못해서인가. 전자라면 자기 생각을 자기도 못 믿는 것이라는 점에서, 후자라면 뻔히 예상됐던 당내 반발조차 돌파하지 못하는 유약함의 현시(顯示)라는 점에서 모두 그의 정치력과 자질을 심각하게 의심케 한다. 무엇이 됐든 이런 의심은 안 대표에게 치명적 타격이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안 대표의 회담 제의는 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