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성민(46)은 자신에 대해 "운이 좋다"고 표현했다. 지난 2012년 드라마 '골든타임' 이후 영화'드라마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기자 가운데 한 명이 된 이유에 관해 질문한 데 대한 답이다.
"다들 열심히 연기해요. 잘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죠. 누구는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에요. 내게 기회가 온 게 '럭키한 일'이라는 걸 잘 알아요. 인기를 얻게 됐죠. 물론, 결국 그 모든 게 허상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됐지만요. 아마 '골든타임'의 최인혁 역은 어떤 배우가 했어도 잘했을 것으로 생각해요."(웃음)
이성민은 주목만 덜 받았을 뿐이지 사실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달 10일 개봉한 영화 '방황하는 칼날'의 이정호 감독은 이 감독의 전작 '베스트셀러'에서 함께한 적이 있다. 이 감독은 이성민에게 한 번 더 호흡을 맞춰보자고 제의했다. '골든타임' 흥행으로 이성민을 택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 감독은 '골든타임' 이전에 이미 이성민에게 출연을 제의했다고 한다.
이성민은 "감독님이 낯 간지러운 멘트를 날리면서 함께하자고 하더라. 저를 평소에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감독 대부분의 러브콜이 그러할 텐데 이성민은 유독 쑥스러워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그도 자신을 찾아줘 "고마웠다"는 말을 덧붙인다.
'방황하는 칼날'은 한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상현(정재영)과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억관(이성민)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영화는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아버지의 행동을 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실제 중학생 딸이 있는 이성민은 "출연하기 전까지는 딸과 이 영화 내용을 결합해 생각하지 않았는데 촬영을 시작하며 상현 입장이 되더라. 내 딸이 이 상황의 상상력에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런 감정이 싫었다. 연기하기 싫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는 형사 역을 맡은 자신보다 "딸을 잃은 상현을 연기한 정재영이 더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현장에서 '수다쟁이'로 유명한 정재영은 이번에는 침묵했다. 이성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재영은 '묵언 수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극 중 이성민이 꼽은 마음이 답답한 장면 하나. 상현이 딸의 신원을 확인하러 시체보관실에 들어가는, 초반 신이다. 이 외에도 몇몇 장면이 정재영과 이성민을 답답하게 했고, 두 사람은 그 잔인하고 안타까운 장면을 촬영하는 아역 배우를 걱정했다.
이성민은 "우리는 무척 걱정했는데 학생 배우가 워낙 해맑더라. 이건 단지 연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러웠다"고 안도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또 시사회 때 자신의 뒷자리에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계속 한숨을 쉬던 이를 언급하며 "나도 그분의 마음에 공감했다. 이 영화는 한숨을 불러오는 영화 같다"고 짚었다.
부인이 영화를 보고 조금 바뀌게 된 것도 좋은 점이란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일방적인 관계에서 논리적인 의사소통이 되더라"고 신기해했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법과 정의에 관해 묻지만, 아이를 향한 관심이나 애정과 관련해서도 짚는다. 영화 속 문제의 시작은 부모의 관심과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 때문에 생긴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성민도 동의했다. "아버지의 복수를 담고 있는 듯하지만 저는 결손가정 청소년들의 아픔과 어른들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간 다양한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성민. 그는 "가끔 내가 너무 자신이 없어서 들어온 캐릭터도 못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무슨 역이든 완벽히 해온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말일까. 그는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떤 악역을 제의받았는데, 머릿속에 어떤 다른 배우가 이 역을 맡아 연기하는 게 생각이 나면 '연기하기 겁이 난다'. 그런 부분에서 아직은 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연기를 향한 욕심은 많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로도 곧 관객을 찾을 예정인 그는 "처음으로 합을 맞춰 액션 연기를 했는데 묘한 쾌감을 느꼈다"며 "승마 교관이 '다음날 몸이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멀쩡했다. 오히려 말 타기 이후 자전거를 타고 50㎞를 달렸어도 문제없었다. 교관이 놀라더다"고 웃었다.
"액션 연기를 하는데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할까, 묘한 감정이 생기더라고요. 액션도 드라마 찍듯 할 줄 알았는데 한 땀 한 땀 찍어서 놀랐죠. 요즘에는 몸을 잘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몸을 잘 못 사용하게 된 배우'의 한 가지 일화. 어렸을 때 지역 극단에서 생활한 이성민은 탈춤을 배우다가 "못 하겠다"며 뛰쳐나갔다. 배우는 다양한 연기를 위해 탈춤, 발레, 마임 등등을 배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를 따라 달려나온 선배가 이성민의 뺨을 세차게 때렸고,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 선배가 없었으면 아마 이성민은 다른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민은 연극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공연됐던 연극 '마르고 닳도록'으로 관객을 찾았던 그는 "연극은 내가 처음 했던 작업이고, 또 선배님들을 통해 나에 대한 평가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며 "연극을 하면 꼭 집에 가는 그런 느낌이더라"고 좋아했다.
뒤늦게 빛을 본 케이스라는 말에 그는 "연기를 하다 보면 금방 지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지치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후배들에게 늘 해주는 조언이다. "마흔한 살이 되어서야 월세 걱정을 하지 않게 됐다"는 이성민. 불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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