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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민족사관 정립하고 항일투쟁으로 생 마친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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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은…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해 통곡하려 한다.'('낭객의 신년만필' 중에서, 1925년)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1880년 오늘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다 개화사상과 민족주의적 세계관에 눈을 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으로 구속됐고 신교육과 계몽운동을 벌였다. 1905년 황성신문 논설기자로 입사했고, 1906년엔 대한매일신보 논설진에 합류해 언론을 통한 애국 계몽활동을 했다. 1910년 망명 전까지 일제 침략과 친일 매국노 규탄 및 국권회복을 외쳤다. 꼿꼿한 처신에 대해 춘원 이광수는 "풍채가 초라한 샌님이나 이상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세수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물을 찍어다 바르는 버릇 때문에 마룻바닥, 저고리 소매와 바지 가랑이가 온통 물투성이가 됐다…남의 말을 듣고 소신을 고치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민족역사 연구에 몰입해 중화(中華)주의, 일제식민(植民)주의 사관에 맞서 민족주의 사관을 정립했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규정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나 이승만과의 갈등으로 결별, 무장투쟁노선을 지향했다. 1928년 잡혀 10년형의 여순옥살이 중 1936년 순국,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정인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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