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시인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 가
  • 가

# 시인

-장석남(1965~ )

시인은 시를 근심할 뿐이다

정치를 근심한 이후에도

정치는 저희들의 똥을 뭉개고 저희들끼리 헹가래를 친다

중략

시인은 스스로를 근심할 뿐

자신의 무지와 우둔과 속됨과 거지 근성을 근심할 뿐

시가 시가 아닌 것을 노닥거릴 때

시가 사랑이 아닌 것을 노닥거릴 때

단것을 먹어 이가 삭듯

기교도 없이 노닥거릴 때

이미 치욕은 아픈 목구멍을 지지라고 뜨거워진다

(부분.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사. 2005. 42,43쪽)

----------------

그렇다. 시인은 시를 근심할 뿐이다. 슬픔이 마르면 새들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듯이 시인은 쌀을 씻어 시를 근심하고 시를 써서 밥을 짓고 아이를 먹이면서도 시를 근심할 뿐이다. 시인이 그림자에 얼어붙은 햇빛을 보고 문득 자기 집 아궁이를 근심할 때에도, 시인은 시를 근심할 뿐이다.

시인은 단어들의 아랫목을 사랑하면 위험하다. 시인이 근심해야 할 것은 불을 피워 첫눈을 내리게 하는 시이다. 도끼로 얼음을 내리치듯 차가운 정신으로 시를 근심할 뿐이다.

맹인이 가장 먼저 눈이 내리는 소리를 알아보듯이, 시인은 시를 근심하며 제 마음의 둘레를 찾는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시를 쓰는 시인은 죽어서 흰 물고기가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누군가 혼자 숨어 살고 있는 집을 찾았을 때처럼, 그 집에 한나절 숨어들어 햇볕을 쬐다가 간 자리처럼, 시인은 세상보다 시 속에 숨어 살며 흔적을 남긴다. 가장 적막하고 위태로운 순간에 시인은 자신의 낱말 위에 조용히 내려앉는 학들을 바라본다.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최근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유화적 접근이 정부의 저자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과거 문재인 정부의 경험과 유사하다는 ...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제주에서 한 중국인이 카지노에서 만난 여성을 유인해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 중이며, 대구시의 고위직 공무원 비위 ...
북한의 드론과 미사일을 조합한 전술이 한반도의 군사 균형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으며, 전문가들은 북한의 공격력이 한국 방공망에 ..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