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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역사속 인물] 월남 이상재 선생 별세

1927년 3월 29일 월남 이상재 선생이 노환으로 눈을 감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장으로 치러진 장례에는 20만 명이 몰려들 정도로 그의 죽음은 민족의 슬픔이었다.

그가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게 된 것은 1902년 6월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아들과 함께 투옥되면서부터였다. 감옥 벽 틈에 낀 마태복음 5장과 산상수훈을 우연히 발견한 뒤, 읽고 또 읽으며 기독교를 가슴에 담았다.

1913년 한국인 최초의 YMCA 총무가 되어 민족혼을 고취시켰고, 3'1운동 때도 배후 인물로 지목돼 옥고를 치렀다.

생의 마지막은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1924년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하면서 조'석간 발행, 신문 만화 '멍텅구리' 연재 등을 통해 일제의 탄압에 의한 재정난을 이겨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세금을 제때 못 내 가산을 전부 강제 차압당할 만큼 가난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인 1927년 2월 신간회 초대 회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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