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제주에 들렀다가 폭설을 만났다. 아이와 나는 숙소에 갇혀 있었다.
눈이 내리자 아이는 처음에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창밖으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과 개 한 마리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풍경을 보며 나가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스스로 단념했다. 장난감도, 읽을 책도 없다. 눈은 모든 흥분을 가라앉혔다. 계획을 중단시켰다. 공항에서 많은 분들이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런 심심함 정도는 고생도, 어려움도 아니다.
하지만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누구라도 방에 꼼짝 않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했는데, 꼼짝없이 숙소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는 '깊은 심심함'을 경험해야만 했다.
몰두할 대상도 없고, 흥분할 만한 것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을 때 느끼는 기분이 심심함이라면 이번에 아이는 살면서 처음 온전한 심심함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곧장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를 쳐야 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어린이집에서 내준 과제를 해결해야 하고, 책을 읽고 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심심할 겨를이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 써야 할 글 때문이라기보다 양치할 때나 혼자서 식사할 때도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다. 우리 모두 방에 꼼짝 않고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존재로 그동안 살아왔던 것이다.
'깊은 심심함'을 견딜 수 없었던 아이는 심심함과 싸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기상 상황을 확인하는 동안 아이는 아빠 장갑을 발에 신고서 집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혼자 놀기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잠이 든 동안 아이는 볼펜으로 제주 날씨를 담은 그림신문을 만들었다. 아이는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뉴스 기자가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찍은 동영상을 할아버지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어느덧 캐리어는 자동차가 되었다. 모든 짐이 엉망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발터 벤야민는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라고 불렀다. 모든 활동의 완전한 중지에 가까운 상황이 되자 아이는 결국 심심함의 발작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아이에게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빠의 역할이라 믿어왔던 아이에게 심심할 겨를과 지루할 틈을 메워주는 일이 사실은 아이가 생각할 겨를과 창조할 수 있는 틈까지 메워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걷는 것이 지루해서 '춤'이 나온 것이다. 심심함을 견딜 줄 모르는 아빠가 아이를 뛰게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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