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차(茶)와 관련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면 신라 때 승려 충담사다. 향가 '찬기파랑가' '안민가'를 지은 충담사가 삼화령 미륵불에 차를 공양하고 돌아오다 왕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온다. 경덕왕 23년(764년)의 일이다.
'훌륭한 스님을 데려오라는 왕명을 받은 신하가 누비옷에 앵통(櫻筒)을 지고 길을 가던 충담사를 모셨는데 앵통에는 차를 달이는 도구가 가득했다. 충담이 차를 달여 왕에게 올렸는데 차 맛이 희한하고 찻잔의 향기가 코를 찌를 듯했다'고 기록했다.
충담사의 행적과 신분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볼 수 있는 향가가 바로 '찬기파랑가'다. 이제까지 우리는 기파랑의 신분을 '화랑'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기파랑이 석가모니를 치료한 고대 인도의 의사 지바카(Jivaka)의 음차 표기라는 주장도 있다. 지바카-지파(기파)라는 것이다. 지바카의 존재를 충분히 알았을 학식 높은 승려 충담사가 그(기파랑)를 노래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시각이다.
고대에 차는 곧 약이었다.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차를 쓴 때문이다. 차향도 치료의 수단이었다. 차는 불교 제례를 위한 용도뿐만 아니라 치료의 수단이었고 누구보다 차에 익숙했던 승려들에게 승의(僧醫)로서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견해도 있다. 몇 해 전 연세대 사학과 지배선 교수는 기파랑은 화랑이 아니라 불경 번역으로 이름 높은 인도 승려 구마라습이라고 주장했다. 진서(晉書)에 '기파(耆婆)는 라습의 별명이다'는 기록과 양나라 승려 혜교가 쓴 고승전에 '습의 원래 이름은 구마라기파다'라는 기록이 근거다. 기파랑이 화랑이든 아니든 충담사 이야기에 얽힌 차와 차향, 향도(香道)는 우리와 떼놓을 수 없는 생활문화이자 법식이고, 수행의 한 방편이다.
차를 즐기는 사람이나 향을 다루는 이들은 향을 맡는 게 아니라 듣는다(聞香)라고 표현한다. 중국차 가운데 우롱차를 마실 때 주로 쓰는 좁고 길게 생긴 찻잔을 문향배(聞香杯)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차맛이 가장 좋은 때다. 우전(雨前)과 세작(細雀) 등도 곡우(穀雨'4월 20일) 전후 닷새를 기준으로 찻잎을 나눈 것이다. 예로부터 매화는 '귀로 향을 듣는 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매화는 이미 꽃잎을 떨구었으니 한잔의 차, 한 자루 향으로 세상과 나 자신을 듣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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