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문화재가 많은 것이 아니라 산 자체가 문화재다.' 경주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남산을 이렇게 표현한다. 북쪽 금오봉(460m)과 남쪽 고위산에 이르는 8㎞ 산자락엔 왕릉 13기, 산성 4곳, 절터 150곳, 불상 130구, 탑 100여 기 등 700여 점에 이르는 문화재'유적이 흩어져 있다. 이런 까닭에 향토사학가들은 남산을 '지붕 없는 박물관' '불국토'로 따로 칭하기도 한다.
신라인들은 1천810만㎡(540만 평) 남짓한 터에 왜 이토록 불교유적을 집중시키고 이런 '산속 극락세계'를 구현했을까. 전문가들은 원효의 대중불교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삼국시대 불교는 왕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위해 봉사했고 귀족들은 경전과 사찰을 독점했다. 상대적으로 민중들은 종교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었다. 왕과 귀족들이 불국사, 석굴암, 황룡사에서 불사를 거행할 때 민초들은 망치와 정을 들고 산에 올라 바위, 벼랑에 그들의 불심을 새겼고 그 흔적이 바로 남산의 불교유적인 것이다. 민중불교, 민초 불심이 깊게 밴 남산을 엄홍길 대장과 함께 올랐다.
◆삼릉계곡 소나무 숲 연중 작가 몰려=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밀레의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8차 산행 집결지인 경주 삼릉주차장엔 15일에도 전국에서 관광버스 30여 대가 집결했다.
바로 엊그제 총선을 치르고 후유증을 털어낸 듯 모두 밝은 표정들이었다. 봄 아지랑이처럼 나른한 참가자들의 정신을 번쩍 깨운 건 엄 대장의 개회 인사말이었다. "경주 남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명산입니다. 계곡 곳곳엔 석공들이 새겨 놓은 부처부터 민초들이 다듬은 마애불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 부처들과 눈과 마음을 맞추면 좋은 불심을 가득 담아 내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기념촬영이 끝나고 등산객들은 삼릉계곡으로 들어섰다. 상큼한 피톤치드 향이 등산객들을 맞았다. 삼릉 숲은 '소나무 앵글의 교과서'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사진작가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이다. 이런 전국적 유명세 덕에 숲은 연중 작가들을 경주로 불러들인다.
◆남산은 민중불교의 현장, 산실=송림을 지나면 계곡의 양옆으로 본격적인 불상, 절터, 석등이 나타난다. 누구의 표현대로 몇 걸음 옮기면 석불, 몇 발자국 떼면 마애불이다. 정상에 이르는 구간에만 마애관음보살, 선각육존불, 마애석가여래좌상 수십 기가 늘어서 있다.
이 불교유적들은 왕실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고 민간에서 이룬 것들이다. 왕실의 불사가 황룡사, 불국사 등 대형 사찰에서 이루어졌다면 민초들은 각자 남산에 올라 그들의 불심을 바위에 새겼던 것이다. 선각(線刻)이나 마애(磨崖) 같은 수공(手工) 양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작업들은 귀족들의 고도의 불사(佛事)과정과 별도로 개인적 차원에서 행해진 것들이다.
계곡 곳곳에서 만난 잘려나간 불두(佛頭)도 많은 사람의 아쉬움을 자아낸다. 학자들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이나 일제강점기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에서 그 단서를 찾고 있다. 이념과 사상의 상대성을 부정하는 이런 반문명적 범죄는 단죄받아 마땅할 것이다.
◆'남산의 송중기' 엄 대장 셀카 인기=다시 등산로를 찾아든다. 1시간쯤 지나자 길게 늘어선 산객들의 머리 위로 안부에 비좁게 자리를 잡은 상선암이 발길을 막아선다. 암자에서 목을 축이는데 엄 대장이 경내로 들어섰다. 등산객들이 와! 하며 '귀인'을 맞았다. 경치 좋은 담벼락에 엄 대장이 들어서자 갑자기 등산객들이 몰려들며 셀카 행렬이 시작됐다.
아줌마 부대로 시작된 포토라인은 사찰 신도, 보살님까지 가세하며 30분 넘게 지체됐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스태프들이 뜯어말렸지만 엄 대장은 행렬을 떨치지 않고 웃으며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 셀카 인파는 금오봉 정상에 이를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엄 대장님, 남산에 송중기라도 뜬 것 같습니다." 농담을 건네자 "지난 총선에 러브콜 받았을 때 나가볼걸"하며 웃음으로 받아쳤다.
산속에서 엄 대장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여성 팬들은 그렇다 쳐도 50, 60대 남성들도 엄 대장 팔짱을 끼며 셀카봉을 들이대곤 한다. 어쩌다 단체 산행 점심 자리에 '납치'라도 되면 좌중의 술잔을 다 받아내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신라 경애왕 비극 서린 포석정=정상엔 원정대 외 한 대학의 MT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술 파티보다 이런 명산을 함께 걸으며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좋은 취지라 생각된다. 금오봉 정상에서 금오정까지는 쾌적한 임도로 이어진다. 금오정에서 서쪽 평야 풍경에 더위를 씻고 일행은 윤을골로 들어선다. 계곡을 따라 한 시간쯤 걷자 포석정 이정표가 나타났다.
포석정은 옛 신라 왕실의 행궁 즉 별장터. 이곳의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는 놀이)은 귀족 향락문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포석정은 신라 역사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927년 한반도 남부에서 세력을 키운 견훤은 신라로 침입해 왕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시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주연을 벌이다가 후백제 군대의 칼에 맞아 최후를 맞았다.
삼릉계곡~금오봉~포석정을 돌아보는 5시간 남산 트레킹은 오후 3시쯤 막을 내렸다. 주차장에서는 관광버스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엄 대장도 일행과 함께 귀경길에 올랐다. 귀갓길 등산객들은 엄 대장과의 셀카를 지인들에게 퍼 나르며 남산 산행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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