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TK, 새누리당, 보수를 놓아주라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한숨짓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잠을 자꾸 설친다고 했다. 광장에 켜진 촛불 숫자가 기록 경신 행진을 계속하자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입에 대기 시작했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걱정, TK와 보수 걱정 때문이라고 했다.

솔직히 대구경북의 장노년층 다수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비극적 사건 끝에 세상에 남겨둔 근혜-근령-지만 등 박 씨 3남매에 대한 연민과 부채 의식 비슷한 것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맏이인 박 대통령에게 그랬다. 성격이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박 대통령이다. 얼굴을 보면 육 여사가 떠오른다는 점도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가장 든든한 '빽'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80% 투표와 80% 지지라는 '80-80 신화'를 만들어 낸 TK였다. 대선 직후 얼마나 뿌듯해했던가. 같은 TK 출신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신앙에 가까운 지지를 보냈던 만큼 콘크리트 지지층이 받은 충격이나 낭패감은 너무나 컸다. 배신감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입을 모았다. 모로 가도 30%는 된다던 콘크리트 지지율은 20%, 10%를 잇달아 무너뜨린 뒤 5%마저 돌파하고 이제는 4%로 고정됐다. 어떤 조사에서는 3%도 나왔다. 오차범위를 적용하면 최하는 0%가 된다. 사실상 '제로'라는 거다. 콘크리트층을 떠받치던 이들이 보기에는 허망하기 짝이 없다. 눈길을 줄 곳이나 손을 내밀 곳이나 마음을 쏟을 곳마저 없어졌다.

박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임기 중 사퇴 못지않게 참으로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또 있다. 내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행사가 초라해지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인 맏딸이 참석하는 아버지 추모 행사는 열릴 수 없게 됐다. 최순실 게이트만 아니었으면. 박정희 대통령을 국립묘지의 지하 세계에서 지상 로비층으로 되살려낸 건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국민들이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불러내기도 쉽지 않은 지하 세계의 맨 바닥층으로 떨어뜨린 이는 다름 아닌 그의 맏딸이다. 자업자득이다. 부질없는 탄식이지만 지금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다 끝이 났다. 박 대통령도 어제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렇다면 정말 대통령은 마음을 비웠을까? 아직 그 정도 경지는 아니다. 4월 이전 자진 사퇴는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아직 뭔가를 고민하고 도모하려는 것 같다. 더 이상 기댈 곳도 없고 받아줄 이도 보이지 않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서일까. 퇴진 후의 안녕을 우려한 시간 벌기인가. 정말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이라도 하려는 건가. 설마 이 와중에 정권 재창출을 기획하겠다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된다. 지금은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 나오는 어떤 궁리도 부질없는 꼼수이자 무리수로 비칠 뿐이다.

다 내려놓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나 지지층이나 지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손해다. 갈피를 잃고 방황하는 TK도 마찬가지다. 대표자를 잘못 뽑은 보수 역시 대안을 찾아나서야 한다. 새누리당도 곳곳에 남은 박 대통령 색채를 씻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간판을 내릴 필요도 있다. 미련이 길어지면 전열 정비만 늦어질 뿐이다. 친박과 새누리당은 최순실과 무관하지 않음을 사과라도 해야 한다. 처절한 반성 없이 적당하게 얼버무려서는 안 한 것만 못하다. 처절하게 부서지고 깨져야 다시 일어설 때 격려라도 받을 수 있다.

보수도, 새누리당도, TK 콘크리트층도 언제까지 박 대통령에 매달릴 수는 없다. 이대로 질질 끌다간 내년 대선은 정말로 하나마나다. 박 대통령은 그걸 원하는가. 이제 놓아달라. 떠나보내 달라. 박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답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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