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잘못됐나?'
온통 '할머니 냄새'였다. 시골집 사랑방에 들어온 듯했다. 방금 전까지 화투 치고 놀던 할머니들의 방. 불쑥 문을 열고 할머니들이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여긴 분명 미술관이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신풍미술관이다.
◆관람객 모두가 떠올리는 '우리 엄마'
2010년 문을 열었다. 이력이 짧다. 하지만 예천군이 어엿한 대표 미술관으로 모시는 곳이다. 관광명소에만 하사한다는 진한 갈색 이정표, '신풍미술관 2㎞'도 교차로에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천 할머니들을 대거 화가로 데뷔시킨 무대, '할매가 그릿니껴?'를 시작한 곳이다.
혼자 오든, 떼로 오든 반드시 그림 설명을 해주는 게 이곳의 철칙이다. '읽어주는 미술관'이면서 그림으로 듣는 '할머니의 인생사'다. 이곳 권숙경 학예팀장은 "우는 관람객이 하도 많아 당황했던 기억이 많다"고 했다.
"식구들과 함께 그림을 보러 오셨는데 아주머니가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림 그린 할머니의 딸인 줄 알았죠. 실제로 딸은 아니었어요.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울었다더군요."
그랬다. 실은 관람객 스스로가 '우리 엄마'를 찾아내는 거였다. 그림 설명은 귓등으로 흘린 채 그림을 보며 우리 엄마를 떠올리기 때문이었다. 우리 엄마의 능력을 떠올리고, 미처 몰랐던 우리 엄마를 되새기며 눈물샘을 터트린 것이었다.
이곳에도 대표작이 있다. '찾아가는 미술관' 프로그램에 대표 선수로 나선다. '꽃뱀' '꽃병' '개구리' '감자밭' 등의 작품이다. 치매어르신센터 등 노인들의 공간에 전시된다. 잃었던 기억을 찾는 데 도우미 역할을 한다. 치매 치료를 돕는 의사의 왕진인 셈이다. 이쯤 되면 미술관이 맞나 싶다.
◆유작이 돼 가는 작품들
개관하던 2010년 즈음엔 그림을 팔아서 할머니들께 돈을 드렸다. 3만원 정도였다. 그림을 팔아서 돈이 된다며 신기해하던 할머니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팔지 않게 됐다. 그림들이 하나씩 유작이 됐기 때문이다.
미술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림은 40점이다. 그림 밑에는 그린 이의 이름과 택호가 사이좋게 붙었다. 밤고개댁, 운골댁, 갈밭댁, 풍산댁, 이산댁, 서담댁, 해주댁…. 할머니 화백들의 평균 연령은 85세. 가장 어린 할머니가 79세다. 이들 중에는 몸이 불편해 병원에 있는 이들도 있다.
미술관에 들어서며 '애걔, 이게 미술관이야?'라던 속생각은 철저히 뭉개졌다. 이곳을 찾으려거든 손수건을 준비하는 게 좋을 듯싶다. 40점의 작품을 다 본 뒤 손수건 하나로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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