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응엠 반두에(53) 씨는 날카로운 통증 때문에 수척해진 얼굴을 연신 찌푸렸다. 보름 전 받은 직장암 수술에서 직장 약 20㎝를 절제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항문은 살렸지만 배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수시로 찾아오는 날카로운 통증은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 수술로 절제한 부위의 상처를 회복하고 있는 단계지만 곧 항암치료에 돌입해야 한다. 항암제 반응이나 경과를 살펴봐야 하는 데다 앞으로 몇 차례나 이어질지 알 수 없어 근심이 크다.
◆홀로 견뎌내는 직장암 3기
8년 전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불안정한 소득 때문이었다. 아내와 함께 얼마 안 되는 땅에 농사를 지었지만 잦은 가뭄에 시달렸다. 본인의 집도 없는 상황에서 생활이 막막했고, 특히 아들 둘을 학교에 보내고 나니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해줄 것 같았다. 자식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라도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렇게 한국에서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응엠 씨에게 병은 약 1년쯤 전부터 기미를 보였다. 심한 혈변이 이어졌지만 치질 정도로 생각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지만 피는 점점 더 많이 나고 몸은 늘 피곤하고 고됐다. 결국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찾은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았고 직장암을 발견했다. 1년간 병을 키워 이미 3기까지 진행이 되고 말았다. 항문에서 10㎝ 정도 위에서 발생한 종양은 다행히 다른 장기로는 번지지 않았지만 림프절까지 전이가 된 상태였다.
서둘러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눈앞이 아득했다. 응엠 씨는 "암인 걸 알게 됐을 때 너무 슬펐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더 안 좋았다. 암이 이겨내기 힘든 병이라 살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기에 가족에게 짐만 지우는 것이 아닌가 싶어 치료에 엄청난 돈을 쓴다는 것이 망설여졌다"고 했다. 고민 끝에 가족들에게 병을 알리자 돈이 없어도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응엠 씨는 "큰 병에 걸렸는데 만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베트남에서 가족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홀로 하는 병원생활도 녹록지 않다. 통증에 시달리고 거동이 불편하지만 여태껏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 언어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단한 한국말은 알아듣지만 의료적인 내용의 의사소통은 힘들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베트남 친구들이 도와주지만 평소에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한다.
◆이미 3천만원에 달하는 치료비
응엠 씨는 본인의 치료만큼이나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다. 그동안 나가던 일용직 일자리도 나갈 수 없게 되면서 가족들에게 송금을 할 수 없게 된 것. 얼마간 준비해둔 비상금으로 당분간 최소한의 생계는 가능하지만 건강보험도 없이 이미 3천만원을 넘긴 병원비는 감당할 방법이 없다. 퇴원 후 여러 차례 이어질 수 있는 항암치료까지 받게 되면 이마저 훨씬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8년간 한국생활을 했지만 돈을 거의 모으지 못했다. 한국어도 잘 못했고 나이도 많은 상황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다. 자동차부품 공장, 플라스틱 재활용품회사 등에 다녔지만 오래 근무하지는 못했고 건설현장 잡부 같은 일용직을 전전했다. 팍팍한 형편 탓에 가족들이 한국에 온 적도, 응엠 씨가 베트남에 다녀온 적도 없다. 응엠 씨는 "두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주지 못한 게 안타깝지만 보람도 있다. 스무 살과 스물두 살 두 아들이 베트남에서 아내의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샘솟게 하는 원천이다.
응엠 씨도 이제 건강을 찾는다면 가족 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응엠 씨는 "이미 8년 동안 가족을 못 만나기도 했고 병원비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이제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돈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환자를 우선 치료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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