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산을 탄 대구의 한 산악인이 있었다. 60대에 북미 최고봉 맥킨리 등정도 하고 세계 최고봉 중국 초모랑마(에베레스트) 등반에도 나섰다가 고령에 주변 만류로 중도 포기한 그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등 국내의 산을 주말마다 찾았다. 그런 그의 가방 속에 빠지지 않는 물건이 있다.
나침반과 산악 지도이다. 특히 그가 이들 두 가지 외에 낯선 산행에서 한 가지 더 챙기는 일이 있다. 바로 산짐승이 다니는 길이다. 보통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잘도 살피곤 했단다. 뒷날 그는 이유를 밝혔다. 산에서 길을 잃어 나침반과 지도로도 어쩔 수 없으면 숲속 짐승이 다닌 길을 따라가면 살길을 찾는다고 했다.
길을 잃는 일은 낯선 산속이 아니라도 일어나곤 한다. 15일 끝난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러난 대구경북의 결과가 그렇다. 침체된 지역 발전을 위해 어느 쪽으로 가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나침반과 지도가 있었지만 두 물건을 써보지도 않고 방향을 틀어잡았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보수 색채 정치 세력만을.
대구 12석, 경북 13석 중 24석을 통합당에 몰아줬다. 그나마 대구 무소속 당선인 1명도 통합당 복당을 공약한 만큼 사실상 대구경북 25석 모두 헌납한 꼴이다. 오랜 세월 특정 정파에만 던지는 몰표가 얼마나 위험하고 지역 활력 복원과 발전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된 앞선 선거로 배웠음에도 말이다.
같은 경상도 울타리의 울산과 부산, 경남의 선거 결과와 비교하면 대구경북에서 나부끼는 한 가지 색깔의 깃발은 25석이라는 적지 않은 수에도 너무 초라하다. 울산이 6석에서 1석을, 부산은 18석에서 3석을, 경남은 16석 가운데 무소속 1석을 뺀 3석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나눠준 투표가 차라리 돋보인다.
코로나19로 '밖에서' 갇힌 대구경북은 이번 총선으로 다시 한번 세상과 통하는 길과 문을 '안에서' 봉쇄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사 산속에서 나침반과 지도가 있다한들, 고장 나거나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숲속의 짐승길을 찾아 살길을 열 대구경북도 아닐 터이니 더 암담하다. 그래서 바라노니, 염치없지만 낙선한 민주당 후보 여러분, 부디 힘을 내어 대구경북을 생각하소서. 스스로와 다음 선거, 그리고 대구경북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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