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1월이다. 1월의 '1'이란 숫자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오직 하나뿐인, 유일한, 그 무엇을 뜻하는 일(一). 그것은 신(神)일 수도, 태양일 수도, 황제일 수도, 오직 한 번뿐인 나의 인생일 수도 있다. 시작되는 '처음'일 수도, 모든 것이 결국 돌아가야 할 '마지막'일 수도 있다.
"문명은 문자에서 시작하고, 문자는 숫자에서 시작하며, 숫자는 1에서 시작한다"고 했듯, 모든 것은 하나, 일(一)에서 시작한다. 한 해도 1월에서 출발한다. 1은 시작하는 곳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지쳐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 존재들이 스러져 눕는 흙바닥(대지). 그곳을 향한 향수도 하나를 향한 욕망이다. 사람처럼 곧게 서 있는 1자를, 한자(漢字)로 일(一)이라 써 보면, 무언가 평평히 누워 있는 모습이다. 곧게 서 있던 나무도 결국 땅에 눕는다. 특별하게 솟아났던 것이 결국 수평으로 누워 '그게 그것'인 것으로 변해 가듯, 서 있는 것(1)이나 누워 있는 것(一)이나 다 같은 '하나'이다.
어쩌면 1은 0이 낳은 독생자(獨生子)이거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독존(獨尊) 같은 것인가. 무한・혼돈・무(無)・제로(空)를 향해 떠나가는 나그네 같은, 모든 존재들의 과정(=소멸・퇴락・멸망)을 기억하라는 영광스럽고도 안타까운 부표인 것일까. "단 한 번,/ 모든 것은 단 한 번뿐 더 이상은 오지 않는다/ 우리도 마찬가지/ 단 한 번뿐 다시라는 건 없어. 그러나/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한 번 존재했었다고 하는 것,/ 바로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그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 9번째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서양의 전통에서 보면 1은 신이 독점했었다. 그런데 이런 1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좀 예외적이긴 하다. 하기사 릴케는 "신이여 내가 죽으면 당신은 뭘 하시겠습니까?"라고 신을 위로하는 시어를 가진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자격도 있다.
수많은 빛이 있으나 결국 하나의 태양에 귀속된다. 잔잔한 별빛도, 흔들리는 촛불도, 따사로운 모닥불의 불꽃도, 내 눈빛도, 모두 위대한 강렬한 저 빛 앞에선 제압당한다. 인간의 삶에서도 그렇다. 촛대였던 주(主) 자가 한 집안을 밝힐 주인공이라는 뜻에서 '주인'이라 읽게 되었다. 모든 불빛은 거기로 모인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한 도시의 시장도, 한 대학의 총장도, 그 자리엔 단 한 사람밖에 없는 '장'(長)이다. 장은 우두머리, 수뇌, 리더, CEO이다. 빛을 발할 자리이자 자격을 가진다.
최근 새로 총장이 들어서고, 조만간 보궐선거로 시장도 바뀌게 된다. 나아가 대통령도 바뀔 것이다. 임기를 가진 장들이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른, 높음, 나음, 오램(항상)'이라 생각한다. 첫째 어른 노릇이다. 어른은 근엄하기도 하나 포용하고 통합하고 중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 자리는 높지만 낮은 평지여야 한다. 분열하고 이간질하는 자리가 아니다. 목에 힘주고 번쩍대며 큰소리만 친다면 '태양을 꺼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환한 빛 아래에 온갖 잔잔한 빛의 수많은 주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둘째, 안목이 높아야 한다. 그래서 한 수라도 더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전을 말한다. 도시는 인구를 잘 챙겨야 살고, 대학은 학생을 잘 받아야 산다. 그렇지 않으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가 아닌, 벚꽃 볼 '사람 없는 순서'대로 망해 갈 것이다. 셋째, 뭐가 나아도 더 나아야 한다. 각기 능력대로 일할 자리, 먹고살 자리를 챙겨 주는 게 보통 사람보다 더 나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 힘이 아니라 짐이 될 뿐이다. 넷째, 가치 있는 약속을 오래 지킬 능력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 했다. 저질러 놓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고 매듭짓고 지속해 가도록 해야 한다.
시작 지점에 있는 1이란 숫자는 둥근 원 속의 한 점처럼, 모든 운동의 시작이며 회귀의 자리이다. 1월, 어느 자리에서든 누구나 주인이 되는 1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모든 것을 품고 나누지 않는, 어머니의 품 같은 따스한 자리였으면 한다. 다시 1월. 싸늘한 대립과 모순의 상황 속에서, 1이란 숫자를 가만히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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