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영화 ‘더 썬’

플로리안 젤러 감독 ‘가족 3부작’ 중 하나
아들 대하는 아버지의 무력감과 노력 그려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좋은 아버지는 뭘까?

사랑하고, 아끼고, 격려하며, 무한하게 지지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까? 가족은 무수히 많은 기억의 세월을 공유하고 있다. 누구에게는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만 유독 더 나쁜 기억도 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상처가 되기도 한다.

19일 개봉한 '더 썬'(감독 플로리안 젤러)은 상처가 덧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 영화다.

뉴욕의 성공한 변호사 피터(휴 잭맨)는 베스(바네사 커비)와 재혼해 갓난아기 테오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전처 케이트(로라 던)가 찾아와 17살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의 문제를 털어놓는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대화조차 피하는 아들이 무섭다는 것이다.

피터는 베스를 설득해 아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호전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이 여전히 학교에 가지 않고, 자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더 썬'은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가족 3부작 중 두 번째 이야기다. '더 파더'(2020)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불명확한 기억과 불안한 심리를 그려내 호평을 받았다면, '더 썬'은 우울증에 걸린 아들로 인해 겪는 아버지의 무력감과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리고 있다.

세 번째 '더 마더'에 앞서 선 보인 '더 썬'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10분간 기립 박수를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피터는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성공한 남자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떠난 무책임한 남자일 뿐이다. 아내 베스와 갈등이 생길 때 피터가 아들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다"고 말하자 아들은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같다"며 반격한다.

피터는 무책임한 아버지를 대신해 10대에 온갖 궂은일을 하며 엄마를 지켰다. 아버지(앤소니 홉킨스)에 대한 반감이 컸다. 지금도 그때 일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렇기에 자신은 아들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싶다. 그러나 그 진심이 아들에게 닿지 않고 악화만 되어간다.

자신 또한 아버지가 하던 말을 아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되고 말았어. 이젠 내 차례인가 봐." 피터의 탄식은 그 어떤 노력도 무위가 되고 마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아픈 숙명을 느끼게 한다.

피터는 바다에서 6살 아들에게 처음 수영을 가르치던 때를 떠올린다. 두려워하던 아들이 마침내 수영을 하게 되면서 기뻐하던 그 순간, 그 행복감. 이젠 피서지에게 두고 온 모자처럼, 손바닥 안의 모래처럼 흩어져 버린다.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영화 '더 썬'의 한 장면.

'더 파더'에 이어 '더 썬'도 감독이 쓴 연극 희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아들 가브리엘과의 경험이라는 감독의 개인사도 담겨 있다. 가브리엘은 영화 속에서 프랑스 출신의 인턴으로 잠깐 얼굴을 비춘다.

'더 썬'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 수렁에 빠진 듯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아들의 두려움과 불안, 애증과 연민 등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휴 잭맨, 로라 던, 안소니 홉킨스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을 한다.

휴 잭맨은 감독에게 열정적인 메일을 보내 피터 역을 맡았으며, 이 영화의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더 파더'의 명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 또한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선사한다. 희곡에는 없는 캐릭터였지만, 그를 캐스팅하고 싶어 감독이 새롭게 추가했다고 한다.

가족은 가깝고도 먼 이름이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며, 간혹 그 도움이 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일 수도 있다.

니콜라스는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것을 나눌 수가 없다. 자해하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더 썬'은 자책과 후회, 원망과 미련 등 캐릭터들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들이 가득한 영화다. 그 감정들은 서로를 아프게 하고,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위안이 되려고 애쓴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 모두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애를 쓰게 한다.

그 감정은 갖가지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크게 보면 사랑의 형태이다. 영화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하게 사랑할 수 있는 그 어떤 지점을 간절하게 건드린다.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