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지나고 다시 분주한 일상이다. 명절 전, 파란 가을 하늘로 백(白)의 선들이 날아오르는 나의 설치작품 사진에 친필로 안부를 건넸다. 가을바람을 담은 나만의 디지털 카드였다. 안부를 전하자 다정한 답장들이 밀려왔다. 그중 지인이 보낸 글귀에서 뒤늦게 차례상에 올랐던 네 가지 과일,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담긴 속뜻을 마주했다. 무심히 대했던 제수의 의미가 이토록 시리고 아린 사랑의 대물림이었다니….
단 하나의 씨앗으로 근본을 상징하는 대추(棗), 다 자란 뒤에도 뿌리 끝에 자신을 키워낸 씨밤을 매단 밤(栗), 그 내리사랑 옆에 백성의 순결한 심성을 닮은 속살이 하얀 배(梨)가 놓인다.
백미는 감(柿)이다. 감 씨를 심으면 고욤나무만 자라 좋은 감을 얻으려면 생가지를 칼로 째서 접을 붙여야 한다. 자식을 키우려 생을 째는 고통을 감내하는 부모의 아픔이다. 게다가 감나무 속은 부모 속처럼 검은 무늬가 진하게 박혀 있다. 과일 씨앗 개수가 출세의 염원이라는 씨줄(가로)이라면, 그 안을 채운 지극한 진액은 부모의 멍든 가슴인 날줄(세로)인 것이다.
대지 위에 천을 드리워 선하나를 그어가는 나의 예술 행위가 인생을 대변하듯, 제수 음식을 정교하게 배열하는 상차림 역시 생사의 차원을 잇는 우리만의 공간 미학인 셈이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이치를 시각적 공간으로 직조한 전통의 미학은, 우리네 성명(姓名)의 원리와 이어진다. 가문의 성씨가 존재의 터를 받치는 거대한 날줄이라면, 대를 잇는 항렬은 역사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씨줄이다. 그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정중앙에 부모가 축원한 이름 한 글자가 얹히며 비로소 한 인간의 좌표가 완성된다. 선과 선이 만나는 교차점은 늘 치열한 아픔이 모이는 곳이자, 동시에 가장 위대한 사랑이 피어나는 중심이다.
돌이켜보면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 이름을 지을 때도 나는 그 중심을 서성였다. 내 손으로 짓고 싶어 성명학 책을 탐독하다가 복잡한 주역의 괘 앞에서 백기를 들고 저자를 수소문했다. 그렇게 받아온 돌림자 이름과 자유로운 후보를 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돌림자가 예쁘지 않다는 아내 의견에 꾀를 내어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 아기의 양팔 끝에 붙였다. 끝까지 매달린 것을 운명으로 삼자는 것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돌림자가 살아남았다. 가문의 막내라 좋은 글자는 다 선점당했지만, 나중에 사촌 형들이 어떻게 찾았냐며 부러워하던 기억 위로 미소가 번진다.
명절 소임이 끝나고 연구실에서 마음을 정돈해 본다. 생으로 째지고 타들어 간 감나무의 상처를 지나며, 우리 역시 성명 석 자라는 존재의 옷을 입고 마주한 시간이다. 이번 추석에 우리가 주고받았던 다정한 이름들과 그 교차하는 삶의 자리마다, 대를 이어 흐르는 아프고도 찬란한 사랑의 종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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