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바기지에 쓴 이름들

오랜만에 앞산에 올라 보았다. 대구 시민에게는 귀중한 휴식처이다. 자주 산을 가까이 하지 못한 탓인지 조금 가파른 데를 오르려면 힘이 들었지만 그럴적마다 고맙게도 딱 알맞은 곳에 작은 나무가 서 있어서 손으로 잡고 오르니한결 쉬웠다. 다른 많은 이들도 그랬던 것인지 손으로 잡은 부분이 사람들의손때로 반질반질 윤이 나 있었다. 볼품없고 이름도 모르는 나무지만 고마운마음이 들어 감사를 표했다.세상에도 이 나무들처럼 이름없이 조용히 제 설 자리에 서서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 고마운 이들이 많이 있다. 묵묵히 할 일하는 하위직 공무원들과 근로자들. 아껴 모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서민들. 장애자나병든 노인들을 돌보아 주든지 공공의 일을 거드는 여러 자원봉사자들과 같이곳곳에 그런 이들이 있다. 세상이 흔들거려도 서 있는 것은 이런 이들 때문이다.

한나절 기분좋게 봄구경을 하며 산을 헤매다가 내려오는 길에 약수터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로 물 한 바가지 떠서 갈증을 풀려다가 그만 기분이 상해 버렸다. 바가지마다 국회의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시민들이 한잔 생수로 삶의 피로를 씻어 보려고 모여드는 약수터에 바가지 몇개 갖다 두고도 자기 이름을 내야만 하는 그 척박한 마음에 물맛을 앗겼다. 선량이라면 서민들의 삶을 좀 넉넉하게 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마음씀이 저 작은 나무들에게 미치지 못하지 않은가. 예비정치인들이 단체장을 노리고 선물을 돌리며 이름내기를 했다하여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어쨌든 정치개혁법이란 것이 용하게 타결되었으므로 저 나무같은 정치인들이나타날지도 모르니 한번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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