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의 향기-나무 아래 와서-배창환

이윽고, 참을 수 없이 노오란 은행잎들이 퍼붓던 날, 그대는 가고, 지나가던 바람이 내 귀를 열어 속삭였지요.

-이제부터 넌 혼자가 아닐 거야.

그건 놀라운 예언이었던가 봅니다. 그날 이후 나는, 새벽 이슬, 초승달, 몇개의 풀꽃, 뜬구름, 작은 시내 같은 것들에 매달려 있었고, 그 안에서 숨쉬며 말 배우는 기쁨에 살았었지요.

다시 노오란 은행잎들이 퍼붓던 날, 그 나무 아래 와서, 그대를 내게 보내고 다시 거두어가버린 당신의 크낙한 마음을 읽고는 처음으로 펑펑 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슬픔 많은 이 땅의 詩人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작과 비평'99년 봄호)

································

△55년 경북 성주 출생

△81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백두산 놀러가자'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