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괄호안에 묶어놓을망정 한자를 병기하자는 쪽으로 나라의 어문정책이 다시 한번 바뀌어지는듯 하다. 한글전용론자들이 보기에는 우리의 나랏말 정책이 또 한차례 뒷걸음질친다고 시름겨워 할테고, 한자병용론자들은 때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정부의 과단성 있는 개혁(?) 조치를 은근히 기릴 것이 틀림없다. 옳고 그름이 서로 맞물려 있어서 이런 경우에야말로 양시론(兩是論)을 들먹여야 무식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국면이다.
당연하게도 어떤 사안의 시비를 가리는데는 그 판단기준, 곧 특정의 자(尺)가 요긴한 몫을 담당한다. 가독성이라는 자를 대변한 한자병용론의 설득력이 단연 우쭐하다. 가령 '개혁의 정체성'이라는 어구를 읽을때 '정체성'옆에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개혁의 본질을 따지자는 것인지, 개혁의 지지부진함을 논란하고 있는지 그 전후 문맥을 뜯어보아야 한다.
한때 자신의 소설에서마저 한자를 괄호없이 병기한 한 유명작가가 '한글은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좀 과격한 한자옹호론을 내세웠지만 그 망언의 골자도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개인적 투정일 뿐이었다.
한편으로 전국민의 교양화와 그 시각의 세계화를 앞당긴다는 취지를 내놓으면, 2천자 안팎의 뜻글자를 언제라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초등학교때부터 익히게 만드는 교육정책은 영어조기교육론의 득세와 정확하게 보조를 같이한다.
또한 글의 정확성과 경제성을 높이는데도 한자의 이바지가 큼은 말할 나위도 없다. 글의 엉터리 쓰임새를 줄이자는 것이 어문정책의 대강령이라면 그 한자병기 시책의 득이 적지는 않다.
〈김원우-소설가·계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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