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육부가 교육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교육계 안팎에서는 '개혁 주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책을 결정한 교육부는 "교사들의 변화 여부가 성공의 관건"이라 주장했고 교사들은 "교육의 주체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진정한 개혁인가"라며 냉소했다. 논란은 정년단축과 명예퇴직 바람이 이어지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나 새 학기가 시작된지 두달만에 이 문제는 교사들간 화제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교육개혁의 핵심인 수행평가가 초.중학교, 고교 1학년까지 본격 실시되면서 논쟁할 의미조차 잃었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성적 위주 평가에서 학생의 평소 수업태도와 발표력, 과제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는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한다는 반응. 하지만 이상적인 제도랍시고 학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시행하다 보니 오히려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우선 수업에 들어가면 수업준비가 잘 됐는지 둘러보고 점수를 매긴다. 한 시간 내내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관찰하며 수시로 채점, 자세가 흐트러질까봐 농담도 삼가한다. 평가를 위해서는 질문하고 듣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윤리, 한문 등 교과단위가 적은 수업의 경우 교사 한 명이 한 학년 전체를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10번. 논어에 대해 아는 것을 발표해 봐" 하는 식의 질문을 연신 해댈 수밖에 없다.
숙제를 내는 일은 더 복잡하다. 점수를 매기기 위해서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도록 어려운 숙제를 내야 한다. 수백명의 숙제를 일일이 읽고 평가해 채점, 기록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ㅇ고 박모교사는 "수행평가 때문에 일거리가 몇 배는 늘었다. 평가와 직접 관련된 일도 많지만 외부에서 요구하는 보고서, 공문 등이 엄청나다. 현재 학생수, 주당 20시간이 넘는 수업 등의 조건에서는 제대로 시행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의 존경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교사들이 가장 걱정하는 점은 평가에 대한 신뢰도. 학생과 학부모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근거를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한다. 그러나 2002학년도에 신입생을 뽑는 각 대학이 고교 교사들의 주관적인 평가를 과연 얼마나 믿어줄지가 더 큰 문제다.
당연히 바뀐 입시제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바뀐 입시제도에 대해 20%의 교사만이 바람직하다고 한 반면 52%의 교사가 실패하고 보완책이 나올 것이라 응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래저래 시달리고 쫓기다 보니 교과연구, 학생지도 등은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모 고교 학생부장은 "각종 매체의 발달로 학생들은 갈수록 복잡다양해지는데 정작 이끌어야 할 교사들은 일에 눌려 눈과 귀가 어두워진다"며 "학생의 탈선과 비행, 교권추락에 대한 책임을 교사들에게만 묻는 것은 넘어진 사람 짓밟는 꼴"이라고 말했다.
한 교사는 "시범학교 등을 통해 검증도 해보지 않고 수행평가를 전면 실시한 것은 교육부의 삼위일체가 낳은 최악의 작품"이라고 꼬집었다. 정치인 장관에 고시 출신 관료, 외국 학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댄 결과라는 것이다.
〈金在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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