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이름도 성도 없는 수 많은 좀도둑들이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반면 이와는 비교도 안되는 큰 도둑으로 이미 감옥에서 콩밥을 먹고 있던 자들이 어느 틈에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들 가운데는 정치가.고급관리.금융계 인사.큰 사업가 등을 비롯하여 전 국가원수까지 포함되어 있다.
자고로 큰 도둑질이 모두 범죄라면, 큰 도둑의 죄는 더욱 크고, 좀도둑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큰 도둑은 더 큰 벌을 받아야 한다. 어째서 좀도둑은 감옥에서 콩밥을 먹어야 하고, 어째서 과거 권력을 가졌던 자들은 밖에 나와 스테이크를 잘라야 하는가. 아무리 정치적으로 설명을 한다 해도 너무나 불공평하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1,2년전까지만 해도 뇌물수수죄로 수갑이 채워진 채 TV 화면이나 신문지상에 나타났던 정치인.재계 인사.고관들이 어느 틈에 깔끔히 옷을 갈아 입고 정계.관계.재계에서의 지도자로서 같은 TV와 신문지상의 톱 기사에 나타난다. 우리의 눈과 귀가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정치판이라 해도 너무나 헷갈린다.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정당에 속한 줄 알았던 한 국회의원이 어느 틈엔가 반대파 정당에 입당해 있고, 얼마가 지나면 또 다른 정당에 속해 있다. 어제까지도 야당에 속했던 당원은 순식간에 여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어느새 한 정당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간판을 바꿨는가 하면, 어느 틈에 새로운 정당이 창당됐다. 어제까지도 정적으로 규탄의 대상이었던 정치지도자를 오늘은 당의 영수로 모시고 있다.
정치가들은 떼를 지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정당은 여기서 짜여지고 저기서 풀어진다. 정치적 이념이 있어야 할 정치가에게서 아무런 신조도 발견할 수 없고, 한 정당의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정치가나 정당이 당장의 권력만을 위해서 편의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과 모습을 바꾼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고, 이 정당이 저 정당인지, 저 정당이 이 정당인지 어지럽다.
요지경 속 같은 것은 정계.관계.재계만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학계.연예계.스포츠계 등도 같은 꼴이다. 권력층.지배계층만이 아니다. 동대문 시장의 상인들, 평범한 직장인들의 사회, 유흥가를 괴롭히는 폭력배들의 세계, 가난에 시달리는 달동네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그렇고, 역사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우리들의 사유 또한 그렇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러하며, 중동도 마찬가지며, 아프리카도 다를 바 없다. 모든 것은 알면 알수록,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알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우리 사정이 적어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데 있으며,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지도층, 특히 정계와 경제계의 지도층이 어느 계층보다도 더 심하다는데 있다. 누가 누구인지,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혼동상태에서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아무의 말도 믿을 수 없고 아무 원칙도 없는, 신뢰와 합리성이 부재한 상태에서 누구의 말을 믿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옳은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이같은 사태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러나 정치가들, 사회적 지도층의 책임이 더욱 큰 것은 분명하다. 국가와 사회의 운명을 결정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그들의 세계가 어느 계층보다도 더 요지경 속에 있기 때문이다. 정말 너무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중들을 생각하고, 엊그제의 폭우로 잘 곳도 먹을 것도 잃은 수 많은 수재민들을 보면 지도층 일반, 특히 정치인들에 대한 격분은 참을 수 없이 터질 듯하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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