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단-석년-이규리

200년 전에도 해는 떴고 해는 졌고

한 남자가 해를 따라 자잘하게

해시계의 눈금을 그었다

목단 꽃잎으로 떨어지던 그 중심의 날들

내가 하나의 중심을 돌면서

해 그림자를 만들던 안뜰의 그늘도

200년전 그 남자의

세한도를 맴돌던 바람과 맞물린

추위같은 것

예산벌에 노니는 예서체의 바람은

아직도 해시계를 도는 쓸쓸한 노래

고장난 시계처럼 감기고

또 풀려 나오고

눈물같은 태엽의 도돌이표 지우려

해시계를 막아서면

내 몸이 석년이 되어 서북으로

길게 그림자를 눕힌다

◈석년(石年):추사 고택 사랑채의 화단에 있는 입석, 화강암으로 만든 해시계

-'사람의 문학' 가을호에서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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