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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세이-죽은 나무에게 사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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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나뭇잎이 진다. 열매도 떨어진다. 이제 곧 풀들은 옷을 벗고 땅 속 뿌리까지 내려가 겨울 채비를 할 것이다. 나무는 가뭄을 견디고 폭풍과 싸우며 힘들게 빚어낸 소중한 열매를 미련 없이 대지에 돌려주고, 수도승처럼 서서 겨울을 맞을 것이다.

◈빈몸에는 탈속의 아름다움이

색색으로 물든 단풍의 화려한 수식도 버리고 홀홀히 빈 몸으로 서는 나무들에게서 나는 탈속의 아름다움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고고한 품격을 느낀다. 미련과 탐욕을 버리고 빈 몸으로 서면 나도 나무처럼 아름다워질까. 대지에 뿌리를 박고 하늘로 머리를 높이 쳐들고 서 있는 나무에게서처럼 고고한 품격이 생겨날까.

나는 3년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1층에 입주했다. 처음에는 고층 아파트의 1층이라 어둡고 답답할 것 같아서 조금 망설였지만, 전용 화단이 있다기에 꽃도 몇 포기 심고 나무도 몇 그루 키울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입주할 때 보니 화단에는 잔디와 회양목과 몇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제법 키가 큰 목련 나무여서 봄이 되면 많은 꽃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며 아내와 그것이 백목련인지 자목련인지 꽃 색깔 알아 맞추기 내기를 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까 그동안 죽은 듯 움츠리고 있던 나무의 등걸에서 연두 빛 잎새들이 나오고 어떤 나무는 꽃이 먼저 피기 시작했다.

◈양심을 속이고 나무를 죽인 결과

그런데 기대하던 안방 쪽의 키 큰 목련나무에는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꽃피는 시기가 지나고 여름이 와도 잎사귀가 나지 않았다. 첫해라 뿌리의 활착이 힘들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해를 기대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날 무렵 아파트 관리인들이 오더니 그 나무가 죽었다고 뽑아 내었다. 나는 그 나무 뽑는 것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 나무의 뿌리는 흙덩이와 함께 비닐 끈으로 촘촘하게 감겨 있었다. 기막힌 일이었다. 당연히 비닐 끈을 풀고 뿌리를 펴서 나무를 심었어야 했는데, 옮겨울 때 뿌리를 묶었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나무의 생사에 관계없이 그날의 품삯은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아파트 회사를 속이고 입주자를 속이고 사회를 속이고 결국은 속임수로 돈을 벌어간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 화단에 목련 나무를 심을 때 장면을 상상해 본다. 어쩌면 그날은 비가 내리고 날도 어두워졌는지 모른다. 뿌리를 꽁꽁 묶어놓은 비닐 끈이 잘 풀리지 않는데 그것을 자를 연장이 잠깐 보이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주위에는 마침 아무도 보는 사람들이 없었을는지 모른다. 귀찮은 마음에 그냥 비닐 끈을 풀지 않고 심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나무는 결국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죽은 나무는 너무나 억울했을 것이다.

◈나무들은 고고함을 굽히지 않아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다. 머지 않아서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조금만 추워도 몸을 움츠리고 작은 권력에도 몸을 굽히는 사람과는 달리 겨울의 찬 바람을 맞아도 나무들은 고고한 모습을 굽히지 않는다. 이제 저 깨끗한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 아파트 화단에 목련 나무를 심은 사람들은 깊이 사죄해야 한다. 비닐 끈에 뿌리가 꽁꽁 묶인 채 숨이 막혀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죽은 목련나무에게, 사람들은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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