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는 사회의 성립 및 존속을 위한 절대조건이다. 그것은 사회라는 건축물의 토대이며, 철근구조이며, 사회라는 복잡한 도시의 원만한 교통을 가능케 하는 도로에 해당된다. 질서의 정연성은 한 사회수준을 측정하는 기본적 잣대의 하나이다. 사회적 질서는 그 구성원들간의 도덕적 및 법적 약속에 기초한다. 도덕적 약속에 의해서 개개인의 일상적 행동이 규제됨으로써 원만한 관계가 맺어지고, 도덕적 약속은 법적 약속에 의해 뒷받침된다. 실천을 동반하지 않는 도덕적 약속은 멀쩡한 헛소리이며, 집행되지 않는 법적 약속은 그럴듯한 연극이다. 도덕적 실천과 법적 집행력은 권위를 갖추었을 때만 효력을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권위의 근거는 진실성과 신뢰성이다. 그러므로 진실과 신뢰성은 한 사회의 초석이며 한 국가의 반석이다.
언론매체를 통하지 않더라도 매일같이 보거나 듣거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각계 각층, 각 분야에서 드러나는 수 많은 사기, 뇌물수수, 강도, 살인범 등으로 얼룩지고 병든 우리 사회는 만연된 도덕적 무감각과 법적 무질서의 물증이며, 이러한 사태는 우리 사회에 진실과 신뢰가 거의 부재한데 기인한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진실성과 신뢰성의 회복이 절실하다. 한탄스러운 사회 전체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개인의 힘만으로 역부족이라면 최고 권력기관으로서의 국가가 앞장서서 스스로 진실을 보이고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국민 개개인의 도덕적 지침이 되어야 한다. 개인이나 국가가 진실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신뢰를 얻지 못하는한 도덕적 권위를 발휘할 수 없으며, 도덕적 권위를 상실한 상태에서는 그 권력은 흔들리고 존재 기반은 무너진다. 또한 국가권력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태에서는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건국 이래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혼란을 줄곧 겪어왔다. 그것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모든 정권이 국민의 진정한 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한데 있었으며, 그 정권들이 신뢰를 받지 못했던 가장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큰 국가적 및 정치적 사안이 걸린 법적 판결이 진실이 아닌 국가권력이나 정치적 혹은 그밖의 다른 권력세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조작되었다고 인식되었던 데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승만정권,박정희에서 전두환.노태우로 연장되는 군사정권, 그리고 김영삼의 문민정권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다행히 역사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정권이 교체되고 국민정부가 섰다. 여러 차원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새 정부는 과거 정권의 구악습을 근본적으로 버리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진실한 국민의 정권이 될 것을 약속했고, 모든 국민들은 희망을 갖고 그러한 약속에 기대를 걸어왔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국민정권의 약속 수행은 진실과 신뢰의 측면에서 아직도 국민의 간절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충족되어 있지 않다. 그 가장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아직도 정부의 진실성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에 있다.
이러한 의구심의 핵심은 사법권의 진실성이다. 사법권의 진실성의 문제는 '옷로비'와'언론문건'사건들을 둘러싼 검찰의 태도.입장.발표.해명.처리에서 그 가까운 예를 찾을 수 있다. 여러가지 맥락에서 여러가지 사항을 추리해 보면 이 문제들을 다루는 검찰의 처리 양식,그에 관한 주장.해명.발표의 앞뒤가 맞지 않고, 사법적 문제가 정치적 이유에서 사실이 왜곡되거나 무엇인가 은폐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권력의 반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국민의 신뢰를 확보해야 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권위가 있어야 하고,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괴롭더라도 진실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국가.사법적 차원에서의 진실과 신뢰의 회복이다.
포항공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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