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는 아파트 분양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나도, 7년전 아파트를 한채 분양받았다. 그 장소가 마침 출근길에 있어 매일 미소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입주를 했다. 그런데 첫날 들어서 보니, 아파트란 이중으로 된 유리문과 시멘트벽으로 공중에 잡아놓은 공간일 뿐이었다.
넓기만 한 유리문에는 무언가 있어야 했다. 서류할 때부터 벌써 커튼, 새시 가게들이 광고 하고 법석이었는데 나는 문득 장지문을 해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지문을 하면 커튼도 필요없을테고, 공간도 커튼보다는 덜 차지할 것이며, 더욱이 문살이 비치는 은은한 빛 그림자를 보년서 새벽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습기와 통풍조절도 한다는 한지의 뛰어난 기능이 17세기에 이미 유럽에 전해졌던 사실까지 기억되어 나를 더욱 고무시켰다. 현관에 서서, 아파트는 '집'인가 아니면 '방'인가를 질문하던 나는 장지문 덕으로 좀 더 집 같아질 아파트를 기대했다.
그런데 장지문을 짜는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어찌어찌 지내던 중에 어느 음식점 실내 장식이 꽤 전통적인 것을 발견하고 그 공사를 한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상대편은 "요즈음 재실 외에는 장지문을 하지 않으니까, 대구에서도 문짜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대구에 남은 세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라면서 아주 잘 해줄 것같이 이야기했다.
문도 재어 가고, 니스칠은 싫으니 황토칠로 해달라고 특별히 주문도 해서 마침내 문이 완성됐다. 아직은 창호지를 붙이지 않은, 창살만 있는 문을 달아 놓고 가는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도 열심히 했다. 그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마자 당장 장지문을 여닫으며 행복해 하고 싶었던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문을 거꾸로 해 놓은 것이다. 창호지를 바르면 문살이 방 안쪽에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문의하는 내게 시공자는 "아니, 누가 17층을 지나가면서 본다고 그렇게 아름다운 문살을 밖에다 놓겠습니까? 그래서 일부러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해 달라고 하겠다는 내게 어머니는 요란 쫌 떨지 말고 살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렇게 놓아 두게 되었다.
내 방의 문을 문이 아니라 인테리어 장식으로 변화시킨 시공자와 다시 짜야하는 수고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덕분에 역사 선생이 장지문을 거꾸로 달고 살게 되었다. 창호지 사이로 보겠다는 문살 그림자는 커녕, 나는 마치 마루에 않아 있는 느낌이었다. 24평 아파트를 고스란히 공중에 바치고, 난 그 툇마루에 앉아서 살게 되었다. '하느님의 방에 문달아 드린걸로 하지 뭐'라고 자위할 수 밖에하지만 나는 또 실패하더라도 현실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우리 전통의 요소들을 환기해 볼 것이다. 시간과 함께 색이 바래는 플라스틱 바가지보다는 박 바가지, 숨쉬는 옹기 그릇 등 우리 자연에서 생겨났으며 민족의 생활경험이 배어 있는 전통의 물건들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오늘도 난 이 마루같이 생긴 내집에 앉아서 골몰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찾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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