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네가 가던 그날은나의 가슴이

가녀린 풀잎처럼 설레이었다

하늘은 그린 듯이 더욱 푸르고

네가 가던 그날은

가을이 가지 끝에 울고 있었다

구름이 졸고 있는

산마루에

단풍잎 발갛게 타며 있었다

-김춘수 '네가 가던 그날은'

소위 '무의미시'를 실험했던 원로시인의 시이다. 시에서 '의미'를 제거한다는 그의 시론은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의사소통이라는 본질적인 기능에 대한 도전이었다. 단지 언어가 빚어내는 이미지나 음악성만 따라가는 시. 이게 무의미시이다.

이 시도 시의 내재율을 극도로 의식하면서 쓴 시이다. 그리고 상큼한 이미지도 빛난다. 특히 '가을이 가지 끝에 울고있다'는 이 서정적인 구절은 읽는 이의 마음을 얼마나 아리게 하는가. 이제 곧 가을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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