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 대중문화 엿보기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라는 시에서 김용택 시인은 '슬픔은 사람의 힘으로는 저항 할 수 없는 힘'이라고 했다. 국내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대표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 '사방 5리가 안개에 덮여 있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올 한해 대중문화도 그랬다. 희극도 아닌 것이 희극으로 자리 매김 했고, 비극은 아예 설자리조차 잃은 듯 했다.

극적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갈등이 없는 드라마가 선악의 대비도 없이 드라마를 이끌었고, 한글사전에도 없는 신조어인 '조폭'은 연말에도 대박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생리적 의미인 구토를 유발하여 반짝인기로 끝날 것 같던 엽기는 문화상품으로 제작되어 인기의 끝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올 한해 대중문화가 갈피를 못 잡고 예측을 불허한 까닭은 우선 '가벼움'이 코드가 된 탓이다. 회칼이나 들고 날뛰는 '조폭'이 의리있는 집단이 되어 관객을 모으고, 리얼리티를 빙자하여 욕설이 가득한 영화가 버젓이 대로변의 극장가에서 상영되고, 지금까지 수치스러워 공개하지 않던 천박한 표현이 '엽기'로 새롭게 인정받는 것도 '가벼움'때문이다.

대중문화는 물과 같은 것.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르고 강제되지 않는다.

세상과 함께 하지만 현실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올 한해의 대중문화는 이런 원칙조차 무시되는 듯 했다.

게다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대중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거나 작가정신이나 실험정신이 가득한 작품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오직 대박을 터트린 상품을 섞거나 재배치하는 등으로 대중의 호주머니를 겨냥하는 데 골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비극은'가벼움'을 거부하고 도덕적 안전판 위에서 마음껏 단죄하고 미워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비극의 목적이라고 했다.

슬픔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극은 이런 우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또한 '가벼움'으로 왜곡된 대중문화의 흐름을 바로잡는다. 비극이 무대에 왕성하게 올려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상덕(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sdhant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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